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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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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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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Kim Moosung and Moon Jaein in 2015 (cropped to Kim).jpg <!-- 공용에서 이미 삭제된 파일로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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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 아버지 [[김용주 (1905년)|김용주]], 어머니 강신팔 혹은 방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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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제17대 대선]]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어 [[이명박]]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2007년 11월]]에는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제18대 총선]]에서 [[친박]]으로 분류되어 공천에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그 해 [[7월]]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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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부터 [[2011년 5월]]까지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냈고, 그 해 [[2011년 6월|6월]] [[대한민국 국회]]의 운영위원회 위원장, 국회의원 야구단 이구동성 단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한나라당의 당명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바뀌어,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 되었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 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정보위원회 위원을 맡으면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한중 의원외교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에는 또다시 공천에 탈락하여 출마하지 못하였으나 같은 해 12월 치러진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제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이 되어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에 기여하였다. 이듬해 [[2013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4·24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부산 영도구의 국회의원|부산 영도구]]에서 당선되며 국회로 복귀하였다.. [[2014년]] [[7월 14일]]에 제3차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되었다.<ref>[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14/2014071490299.html 김무성, 새누리당 신임 당 대표 선출]. 《TV조선》2014년 7월14일 작성. 2014년7월14일 확인</ref> 2016년 4월 14일, 4.13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한 결과를 두고 20대 총선 결과는 새누리당이 초래한 것이라고 하며 새누리당 선거 참패에 모든 책임을 지고 당대표에서 사퇴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tf.co.kr/read/ptoday/1633605.htm|제목=김무성, 당대표 사퇴 "총선 결과, 새누리당이 초래"|성=이|이름=새롬|날짜=2016-04-14|뉴스=|출판사=|확인날짜=}}</ref>
[[2010년 5월]]부터 [[2011년 5월]]까지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냈고, 그 해 [[2011년 6월|6월]] [[대한민국 국회]]의 운영위원회 위원장, 국회의원 야구단 이구동성 단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한나라당의 당명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바뀌어,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 되었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 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정보위원회 위원을 맡으면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한중 의원외교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제19대 총선]]에는 또다시 공천에 탈락하여 출마하지 못하였으나 같은 해 12월 치러진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제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이 되어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에 기여하였다. 이듬해 [[2013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4·24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부산 영도구의 국회의원|부산 영도구]]에서 당선되며 국회로 복귀하였다.. [[2014년]] [[7월 14일]]에 제3차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되었다.
다음은 김무성 의원의 새누리당 대표 출마 공식선언 전문내용이다.

“과거와 결별합시다!”
“미래로 나아갑시다!”
“저부터 혁신하겠습니다!” :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당원 동지 여러분!

지난 6.4 지방선거는 국민의 냉엄한 심판이자 경고였습니다. 저희 새누리당은 국민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세월호 참사 앞에 대한민국은 없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관행적 비정상의 정상화’를 적극 추진했지만 오랜 기간 묵은 때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 있는 사람들이 국민을 실망시켰습니다.

저 자신부터 자책하고 반성합니다.

저는 역사를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누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냐, 미래냐”를 선택해야 합니다. 낡은 체제, 낡은 사고는 세월호와 함께 영원히 과거로 보내야 합니다. 새로운 체제, 새로운 생각으로 미래를 건설해야 합니다.

국가 개조를 넘어 국가 재탄생의 각오로 미래를 만듭시다! 낡은 과거와 과감히 결별합시다!

국민들은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구악을 반드시 척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적폐를 청산하고 부정부패가 이 땅에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눈에 다시는 피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재탄생과 혁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엄숙한 마음으로 역사가 요구하는 소명을 다하고자 오늘 새누리당의 당대표 출마를 선언합니다.

저부터 혁신하겠습니다. 위기에 빠진 새누리당과 대한민국을 혁신하겠습니다. 새누리당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닫히지 않고 열린 정당으로 만들겠습니다. 기득권을 철저하게 버리는 정당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 재창출입니다. 우리 새누리당의 혁신 없이는 정권 재창출은 없습니다.

국민의 마음이 역사를 만듭니다. 새누리당을 혁신해 국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과거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과거의 모든 구태를 과감하게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가겠습니다.


이를 위해, 국민과 당원 앞에 다음과 같이 약속드립니다.

첫째, 전당대회부터 과거형이 아닌 미래형으로 혁신하겠습니다.

과거 전당대회에서는 돈봉투가 난무하는 부끄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정치란 바른 것입니다. 저부터 돈봉투 없는 깨끗한 선거를 치르겠습니다. 부정부패의 때가 묻어서는 리더십이 발휘되지 않습니다. 깨끗한 도덕성으로 무장해야만 당당한 새누리당, 강한 새누리당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선거공영제 강화를 제안합니다.

돈과 관계없이 유능한 사람이면 누구나 당의 일꾼이 될 수 있도록 전당대회 기탁금을 대폭 낮춰야 합니다.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각 당원협의회의 경비를 중앙당에서 일괄 부담해야 합니다. 깨끗한 전당대회를 위해 후보 간 공개적인 신사협정 체결을 제안합니다.

둘째, 새누리당을 과거형 정당에서 미래형 정당으로 바꾸겠습니다. 이를 위해 당원과 국민이 실질적 주인이 되는 정당민주주의를 확립하겠습니다.

정당 민주주의 요체는 공천권을 당원과 국민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하향식 공천이 당내 분열과 선거 패배로 이어진 쓰라린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의 권력자가 줄 세우기를 강요하지 않아야 당내 파벌과 부정부패를 막고 당이 더욱 강하게 결집할 수 있습니다.

상명하복 형태의 비민주적인 당론 결정은 당의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절차가 비민주적인 정당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요 현안에 대한 의사 결정권한을 당원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당원에게 모바일을 통해 의견을 물어보는 시스템을 도입하겠습니다.

당 대표는 권력을 누리고, 계파를 만들고, 호통을 치는 자리가 아닙니다. 당권이라는 단어에서 ‘권력 권(權)’자를 당원들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중앙에 전달하고, 전원이 당무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가칭 ‘정책민원위원회’를 신설하겠습니다.

당의 모습을 젊게 만들겠습니다. 선거 때마다 20~30대의 낮은 투표율을 바라는 ‘천수답 정당’, 투표율에 따라 유불리를 따지는 ‘기회주의 정당’으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20~30대가 사랑하고, 믿고, 자랑스럽게 참여하는 정당에 미래가 있습니다.

청년공천 할당제, 청년지도자 육성기관 설립, 정기적인 타운홀 미팅 등을 통해 미래의 주역들을 끌어안는 젊은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겠습니다.

정당조직의 활성화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동지적 관계 속에서 이뤄집니다.

당 사무처 출신으로 최초의 사무총장, 원내대표, 비대위원장을 지낸 저는 군림하는 대표가 아니라 큰 형 같은 대표로서, 사무처 당직자들과 소통하겠습니다.


셋째, 과거의 웰빙 정당, 무기력한 정당이라는 오명을 지우겠습니다. 활력 있는 정당으로 거듭 나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적극 뒷받침하겠습니다.

저는 지난 대선 때 총괄선대본부장으로서 정권 창출의 선봉에 섰던 만큼 무한책임을 지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정-청간 ‘건강한 관계’을 설정하겠습니다.

대한민국 경쟁력을 갉아 먹는 적폐 청산을 위한 대통령의 국가개조 작업에 적극 동참하겠습니다.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올바르게 전달하는 밝은 눈과 큰 귀가 되겠습니다. 국정 운영의 책임을 공유하고, 국정동반자로서 할 말은 하는 집권여당을 만들겠습니다. 행정부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견제하고 협조하겠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새누리당이 만들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넷째, 과거의 정치는 소모적인 정치였습니다. 거짓말과 저질 싸움이 판을 쳤고, 국민은 외면했습니다. 이제 생산적인 미래정치로 바뀌어야 합니다.

여야는 경쟁 상대이자 국정을 함께 이끌어갈 파트너입니다. 야당이 없는 정치는 외발 자전거와 같습니다.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설득의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심은 여야 누구에게도 승리를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여야가 힘을 합쳐서 나라를 미래로 잘 이끌어가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었습니다.

대화와 타협, 양보를 통해 상생의 정치, 공존의 정치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이를 위해 여야 대표가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할 수 있는 ‘공존정치 회의체(가칭)’ 신설을 추진하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당원동지 여러분!

한국 경제가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2~3% 수준의 `저성장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청년실업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가계 부채가 1025조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도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세대간 갈등도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수도권과 지방이 골고루 잘 사는 ‘안민부방(安民富方)’을 실천하겠습니다.

그늘진 곳을 줄이고 ‘격차 해소’라는 시대정신을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입법 활동과 정치 활동의 중심을 낮고 어두운 곳에 두겠습니다.

따뜻한 새누리당을 만들겠습니다.

나라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영세상공인, 중소기업, 중견기업과 대기업이 대등한 입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공존 경제민주화’의 틀을 만들겠습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어르신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을 적극 개발하고, 노인공천할당제도를 도입하겠습니다.

시장민주주의의 틀에 맞게 정부 역할이 조정돼야 합니다. 경제주체의 창조성이 살아나도록 시장을 조정하고 창출하는 ‘정책의 대전환’이 이뤄지도록 힘쓰겠습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미래 비전을 뒷받침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신성장동력인 통일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미리 준비하는 집권 여당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여의도연구원 부설로 ‘통일준비연구소’를 신설하겠습니다. 당 차원에서도 체계적으로 통일 준비에 나서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당원동지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자세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진정한 정치는 말이 아닌 행동입니다. 지난 2012년 공천 탈락 때 “우파 분열의 씨앗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백의종군이 내가 가야 할 길이다. 나보다 당이 우선이고, 당보다 나라가 우선이다. 당과 나라를 위한 길이라면 그 길을 가겠다”고 약속했고,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대선을 책임지고 승리로 이끈 후, 저는 감사편지 한 장 써 붙이고 떠났습니다.

저는 의리를 목숨처럼 여기고 정치인생의 신조로 삼았습니다. 당이 위기에 처할 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새누리당이 위기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한 번 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기회는 주지 않으실 겁니다.

변화하지 않는 정당, 변화하지 않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이번에 확실히 바꿉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갑시다!

저 김무성이 변화와 혁신의 선봉에 서겠습니다. 새누리당의 미래를 책임지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당원 동지 여러분!

이번 전당대회는 우리 새누리당이 ‘과거에 안주하느냐 미래로 나아가느냐’, 역사적 선택을 하는 장입니다.

우리 함께 미래로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끝으로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과거의 전당대회는 출마선언, 개소식, 출정식 등을 열어 세몰이, 줄세우기 등 고비용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이제 저부터 혁신한다는 차원에서 오늘 당사에서 나홀로 출마선언을 하고 개소식, 출정식 등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 논란 ==
== 논란 ==
===차별 논란===
===차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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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계 최대언론사 중 하나인 알-자지라와 나이지리아 매체인 뱅가드 등 현지 언론들은 한국의 유력 대선후보가 아프리카계 유학생에게 피부색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뒤 사과했다고 보도했으며,
아랍계 최대언론사 중 하나인 알-자지라와 나이지리아 매체인 뱅가드 등 현지 언론들은 한국의 유력 대선후보가 아프리카계 유학생에게 피부색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뒤 사과했다고 보도했으며,
<ref>{{뉴스인용|url=http://www.thecatch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77|제목=김무성 대표의 '연탄 발언'에 심기불편한 나이지리아|출판사=더캣쳐}}</ref>
<ref>{{뉴스인용|url=http://www.thecatch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77|제목=김무성 대표의 '연탄 발언'에 심기불편한 나이지리아|출판사=더캣쳐}}</ref>
나이지리아 유력 매체인 naiji.com에서는 '''"한국 정부는 나이지리아인들에 인종차별적인가?"'''라고 전하는 등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나이지리아 유력 매체인 naiji.com에서는 '''"한국 정부는 나이지리아인들에 인종차별적인가? 질문을 받은 나이지리아 학생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답했다."'''라고 전하는 등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ref>{{뉴스인용|url=https://thenewspro.org/?p=16333|제목=나이지리아 언론, 한국 정부 나이지리아인들에 인종차별적인가?|출판사=뉴스프로}}</ref>
<ref>{{뉴스인용|url=https://thenewspro.org/?p=16333|제목=나이지리아 언론, 한국 정부 나이지리아인들에 인종차별적인가?|출판사=뉴스프로}}</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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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력 ==
== 학력 ==
* 1964년 [[화랑초등학교 (부산)|부산화랑국민학교]] 졸업
* [[1964년]] [[화랑초등학교 (부산)|부산화랑국민학교]] 졸업
* 1967년 [[경남중학교]] 졸업
* [[1967년]] [[경남중학교]] 졸업
* 1970년 [[중동고등학교]] 졸업
* [[1970년]] [[중동고등학교]] 졸업
* 1976년 [[한양대학교]] 경영학 학사
* [[1976년]] [[한양대학교]] 경영학 학사


=== 비학위 수료 ===
=== 비학위 수료 ===
* 1999년 [[고려대학교|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 수료
* [[1999년]] [[고려대학교|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 수료


=== 명예 박사 학위 ===
=== 명예 박사 학위 ===
* 2003년 [[부경대학교]] 명예정치학 박사
* [[2003년]] [[부경대학교]] 명예정치학 박사
* 2006년 [[한양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
* [[2006년]] [[한양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
* 2015년 [[동국대학교]] 명예정치학 박사
* [[2015년]] [[동국대학교]] 명예정치학 박사
* 2015년 [[한국해양대학교]] 명예행정학 박사
* [[2015년]] [[한국해양대학교]] 명예행정학 박사


== 경력 ==
== 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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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 선거대책본부장
*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 선거대책본부장
* [[2013년]] [[7월 20일]] 6.25 참전유공자회 부산광역시지회 고문
* [[2013년]] [[7월 20일]] 6.25 참전유공자회 부산광역시지회 고문
* [[2014년]] ~ [[2016년]] [[새누리당]] 대표 최고위원
* [[2014년]] [[새누리당]] 대표 최고위원


== 의정활동 ==
== 의정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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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명||직책명||대수||정당||득표율||득표수||결과||당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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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제14대 총선]]||[[틀:제14대 비례대표 민주자유당|국회의원 (전국구)]]||14대||[[민주자유당]]||{{막대|청|3|8|5}} 38.5%||7,923,718표||전국구 50번||낙선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제14대 총선]]||[[틀:제14대 비례대표 민주자유당|국회의원(전국구)]]||14대||[[민주자유당]]||{{막대|청|3|8|5}} 38.5%||7,923,718표||전국구 50번||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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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제15대 총선]]||[[부산 남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 (부산 남구 을)]]||15대||[[신한국당]]||{{막대|신한|6|2|6}} 62.6%||38,970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부산 남구 국회의원 당선]]
|[[대한민국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제15대 총선]]||[[부산 남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부산 남구 을)]]||15대||[[신한국당]]||{{막대|신한|6|2|6}} 62.6%||38,970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부산 남구 국회의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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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제16대 총선]]||[[부산 남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 (부산 남구)]]||16대||[[한나라당]]||{{막대|한|6|6|9}} 66.9%||75,215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부산 남구 국회의원 당선]]
|[[대한민국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제16대 총선]]||[[부산 남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부산 남구)]]||16대||[[한나라당]]||{{막대|한|6|6|9}} 66.9%||75,215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부산 남구 국회의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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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제17대 총선]]||[[부산 남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 (부산 남구 을)]]||17대||[[한나라당]]||{{막대|한|5|4|9}} 54.9%||38,826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부산 남구 국회의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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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제18대 총선]]||[[부산 남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 (부산 남구 을)]]||18대||[[무소속]]||{{막대|무|4|9|7}} 49.69%||26,255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부산 남구 국회의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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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4·24 재보궐선거]]||[[부산 영도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 (부산 영도구)]]||19대||[[새누리당]]||{{막대|새|6|5|7}} 65.72%||27,981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영도구 국회의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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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제20대 총선]]||[[부산 중구의 국회의원|국회의원 (부산 중구]]·[[부산 영도구의 국회의원|영도구)]]||20대||[[새누리당]]||{{막대|새|5|5|8|0}} 55.80%||43,447표||1위||[[파일:국회의원당선.png|25px|부산 중구·영도구 국회의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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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일 (월) 22:28 판

김무성
파일:김무성.JPG
kimmoosung
출생1951년 9월 20일(1951-09-20)(73세)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경상남도 부산시 용당동
(現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
성별남성 위키데이터에서 편집하기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거주지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본관김해
학력한양대학교 경영학 학사
경력삼동산업 전무
제48대 내무부 차관
한나라당 사무총장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원내대표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배우자최양옥
자녀슬하 1남 2녀
종교불교
소속위원회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의원 선수6
의원 대수15·16·17·18·19·20
정당새누리당
지역구부산 중구·영도구

김무성(金武星, 1951년 9월 20일 ~ )은 대한민국정치인이다.

생애

김무성은 1951년 9월 20일부산에서 김용주와 어머니 강신팔 사이에서 4남 1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1976년에 동해제강에 입사하였고, 1982년 32세의 나이에 삼동산업의 전무가 되었다.

1987년 37세에 통일민주당의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이를 통해 정계에 입문하여 상도동계가 되었으며, 민주화추진협의회에도 참여하였다. 1986년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되었고, 1985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직을 역임했다. 1987년에는 통일민주당 제13대 대선 대책본부 재정국장이 되었는데, 후보단일화 실패로 인해 당시 통일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김영삼은 선거에서 2위로 낙선하였다. 같은 해에 통일민주당 총무국장, 당 기획조정실 차장을 역임하였고, 1989년에는 국회 행정실장을 역임하였다.

1990년 3당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김영삼김덕룡 등과 함께 민주자유당 당원이 되었다. 이후 민주자유당의 의사국장과 의원국장 등을 지냈다. 1992년에는 민주자유당김영삼 대선 후보 추대대책위원회의 총괄국장을 맡았다. 1993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행정실장,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1994년에는 대한민국의 제48대 내무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1996년신한국당 소속으로 제15대 총선에 출마하여 부산 남구 을에서 당선되었다. 2005년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 및 한나라당의 사무총장이 되었다.

2007년 제17대 대선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어 이명박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였다. 2007년 11월에는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되었다. 이후 제18대 총선에서 친박으로 분류되어 공천에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그 해 7월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

2010년 5월부터 2011년 5월까지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냈고, 그 해 6월 대한민국 국회의 운영위원회 위원장, 국회의원 야구단 이구동성 단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한나라당의 당명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바뀌어,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 되었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 국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정보위원회 위원을 맡으면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한중 의원외교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에 치러진 제19대 총선에는 또다시 공천에 탈락하여 출마하지 못하였으나 같은 해 12월 치러진 제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이 되어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에 기여하였다. 이듬해 4·24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부산 영도구에서 당선되며 국회로 복귀하였다.. 2014년 7월 14일에 제3차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되었다. 다음은 김무성 의원의 새누리당 대표 출마 공식선언 전문내용이다.

“과거와 결별합시다!” “미래로 나아갑시다!” “저부터 혁신하겠습니다!” :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당원 동지 여러분!

지난 6.4 지방선거는 국민의 냉엄한 심판이자 경고였습니다. 저희 새누리당은 국민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세월호 참사 앞에 대한민국은 없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관행적 비정상의 정상화’를 적극 추진했지만 오랜 기간 묵은 때는 쉽게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 있는 사람들이 국민을 실망시켰습니다.

저 자신부터 자책하고 반성합니다.

저는 역사를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누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냐, 미래냐”를 선택해야 합니다. 낡은 체제, 낡은 사고는 세월호와 함께 영원히 과거로 보내야 합니다. 새로운 체제, 새로운 생각으로 미래를 건설해야 합니다.

국가 개조를 넘어 국가 재탄생의 각오로 미래를 만듭시다! 낡은 과거와 과감히 결별합시다!

국민들은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구악을 반드시 척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적폐를 청산하고 부정부패가 이 땅에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눈에 다시는 피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재탄생과 혁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엄숙한 마음으로 역사가 요구하는 소명을 다하고자 오늘 새누리당의 당대표 출마를 선언합니다.

저부터 혁신하겠습니다. 위기에 빠진 새누리당과 대한민국을 혁신하겠습니다. 새누리당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닫히지 않고 열린 정당으로 만들겠습니다. 기득권을 철저하게 버리는 정당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 재창출입니다. 우리 새누리당의 혁신 없이는 정권 재창출은 없습니다.

국민의 마음이 역사를 만듭니다. 새누리당을 혁신해 국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과거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과거의 모든 구태를 과감하게 청산하고, 미래로 나아가겠습니다.


이를 위해, 국민과 당원 앞에 다음과 같이 약속드립니다.

첫째, 전당대회부터 과거형이 아닌 미래형으로 혁신하겠습니다.

과거 전당대회에서는 돈봉투가 난무하는 부끄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정치란 바른 것입니다. 저부터 돈봉투 없는 깨끗한 선거를 치르겠습니다. 부정부패의 때가 묻어서는 리더십이 발휘되지 않습니다. 깨끗한 도덕성으로 무장해야만 당당한 새누리당, 강한 새누리당을 만들 수 있습니다.

선거공영제 강화를 제안합니다.

돈과 관계없이 유능한 사람이면 누구나 당의 일꾼이 될 수 있도록 전당대회 기탁금을 대폭 낮춰야 합니다.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각 당원협의회의 경비를 중앙당에서 일괄 부담해야 합니다. 깨끗한 전당대회를 위해 후보 간 공개적인 신사협정 체결을 제안합니다.

둘째, 새누리당을 과거형 정당에서 미래형 정당으로 바꾸겠습니다. 이를 위해 당원과 국민이 실질적 주인이 되는 정당민주주의를 확립하겠습니다.

정당 민주주의 요체는 공천권을 당원과 국민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하향식 공천이 당내 분열과 선거 패배로 이어진 쓰라린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의 권력자가 줄 세우기를 강요하지 않아야 당내 파벌과 부정부패를 막고 당이 더욱 강하게 결집할 수 있습니다.

상명하복 형태의 비민주적인 당론 결정은 당의 체질을 허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절차가 비민주적인 정당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요 현안에 대한 의사 결정권한을 당원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당원에게 모바일을 통해 의견을 물어보는 시스템을 도입하겠습니다.

당 대표는 권력을 누리고, 계파를 만들고, 호통을 치는 자리가 아닙니다. 당권이라는 단어에서 ‘권력 권(權)’자를 당원들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중앙에 전달하고, 전원이 당무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가칭 ‘정책민원위원회’를 신설하겠습니다.

당의 모습을 젊게 만들겠습니다. 선거 때마다 20~30대의 낮은 투표율을 바라는 ‘천수답 정당’, 투표율에 따라 유불리를 따지는 ‘기회주의 정당’으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20~30대가 사랑하고, 믿고, 자랑스럽게 참여하는 정당에 미래가 있습니다.

청년공천 할당제, 청년지도자 육성기관 설립, 정기적인 타운홀 미팅 등을 통해 미래의 주역들을 끌어안는 젊은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겠습니다.

정당조직의 활성화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동지적 관계 속에서 이뤄집니다.

당 사무처 출신으로 최초의 사무총장, 원내대표, 비대위원장을 지낸 저는 군림하는 대표가 아니라 큰 형 같은 대표로서, 사무처 당직자들과 소통하겠습니다.


셋째, 과거의 웰빙 정당, 무기력한 정당이라는 오명을 지우겠습니다. 활력 있는 정당으로 거듭 나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적극 뒷받침하겠습니다.

저는 지난 대선 때 총괄선대본부장으로서 정권 창출의 선봉에 섰던 만큼 무한책임을 지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당-정-청간 ‘건강한 관계’을 설정하겠습니다.

대한민국 경쟁력을 갉아 먹는 적폐 청산을 위한 대통령의 국가개조 작업에 적극 동참하겠습니다.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올바르게 전달하는 밝은 눈과 큰 귀가 되겠습니다. 국정 운영의 책임을 공유하고, 국정동반자로서 할 말은 하는 집권여당을 만들겠습니다. 행정부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견제하고 협조하겠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새누리당이 만들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넷째, 과거의 정치는 소모적인 정치였습니다. 거짓말과 저질 싸움이 판을 쳤고, 국민은 외면했습니다. 이제 생산적인 미래정치로 바뀌어야 합니다.

여야는 경쟁 상대이자 국정을 함께 이끌어갈 파트너입니다. 야당이 없는 정치는 외발 자전거와 같습니다.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설득의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심은 여야 누구에게도 승리를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여야가 힘을 합쳐서 나라를 미래로 잘 이끌어가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었습니다.

대화와 타협, 양보를 통해 상생의 정치, 공존의 정치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이를 위해 여야 대표가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할 수 있는 ‘공존정치 회의체(가칭)’ 신설을 추진하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당원동지 여러분!

한국 경제가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2~3% 수준의 `저성장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청년실업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가계 부채가 1025조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도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세대간 갈등도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수도권과 지방이 골고루 잘 사는 ‘안민부방(安民富方)’을 실천하겠습니다.

그늘진 곳을 줄이고 ‘격차 해소’라는 시대정신을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입법 활동과 정치 활동의 중심을 낮고 어두운 곳에 두겠습니다.

따뜻한 새누리당을 만들겠습니다.

나라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영세상공인, 중소기업, 중견기업과 대기업이 대등한 입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공존 경제민주화’의 틀을 만들겠습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어르신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을 적극 개발하고, 노인공천할당제도를 도입하겠습니다.

시장민주주의의 틀에 맞게 정부 역할이 조정돼야 합니다. 경제주체의 창조성이 살아나도록 시장을 조정하고 창출하는 ‘정책의 대전환’이 이뤄지도록 힘쓰겠습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미래 비전을 뒷받침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신성장동력인 통일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미리 준비하는 집권 여당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여의도연구원 부설로 ‘통일준비연구소’를 신설하겠습니다. 당 차원에서도 체계적으로 통일 준비에 나서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당원동지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자세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진정한 정치는 말이 아닌 행동입니다. 지난 2012년 공천 탈락 때 “우파 분열의 씨앗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백의종군이 내가 가야 할 길이다. 나보다 당이 우선이고, 당보다 나라가 우선이다. 당과 나라를 위한 길이라면 그 길을 가겠다”고 약속했고,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대선을 책임지고 승리로 이끈 후, 저는 감사편지 한 장 써 붙이고 떠났습니다.

저는 의리를 목숨처럼 여기고 정치인생의 신조로 삼았습니다. 당이 위기에 처할 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새누리당이 위기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이 한 번 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기회는 주지 않으실 겁니다.

변화하지 않는 정당, 변화하지 않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이번에 확실히 바꿉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갑시다!

저 김무성이 변화와 혁신의 선봉에 서겠습니다. 새누리당의 미래를 책임지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당원 동지 여러분!

이번 전당대회는 우리 새누리당이 ‘과거에 안주하느냐 미래로 나아가느냐’, 역사적 선택을 하는 장입니다.

우리 함께 미래로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끝으로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과거의 전당대회는 출마선언, 개소식, 출정식 등을 열어 세몰이, 줄세우기 등 고비용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이제 저부터 혁신한다는 차원에서 오늘 당사에서 나홀로 출마선언을 하고 개소식, 출정식 등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논란

차별 논란

차별금지법에 대한 종교편향 논란

2016년 2월 29일 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함께 차별금지법 제정 을 반대하는 취지로 대한민국살리기나라사랑운동본부(대표 이영훈 목사)가 주최하고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대표 전광훈 목사)가 주관한 3당 대표 초청 국회 기도회에서 "차별금지법과 동성애법, 인권 관련 법에 대해서는 여러분(개신교 관계자)이 원하시는 대로 방침을 정하도록 할 것이다. 모든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다." 라 발언하며 반대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러한 발언은 새누리당 윤리강령 20조에 분명히 당원은 성 지향성을 이유로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위배한다.

이에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평등을위한한표 레인보우보트,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인권단체들은 공동성명을 통하여 "정치와 종교계의 유착을 어떤 부끄럼이나 망설임 없이 드러냈다"며 "차별선동세력들이 버젓이 국회에서 행사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여당대표와 제1야당의 지도부가 참석하고 고개를 숙여가며 차별 선동에 동조하겠다고 약속하는 태도는 한국이 과연 정교분리의 법치 국가인지 의심케 한다."고 비판하였다. [1] [2]

언론 또한 허핑턴 포스트는 필리버스터 정국에서 새누리당 김무성대표와 더민주당 박영선 비대위원이 차별금지법과 동성애법, 인권 관련 법에 대해 한 마음 한 뜻을 모으는 중이다. 라고 비판하였다. 노동당 및 녹색당도 같은 취지의 논평인 '소수자 차별로 일치단결하나'에서 '표를 구걸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소수 종교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두 정당의 행태에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는 새누리당의 구호나,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하기 때문에 테러방지법을 반대한다는 더불어민주당의 구호가, 한 순간에 거짓이 되었다.'라고 평하였다.

20대 국회의원 선거유세 중 혐오발언 논란

김무성 의원은 2016년 4월 9일 용인에서 자당의 이상일 후보 선거유세를 하면서 "이 지역에 동성애를 찬성하는 후보가 나와 있다. 그런 사람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우리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느냐"[3][4]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막아야 하지 않나. 동성애는 인륜을 파괴하는 것이다. (표창원 후보가) 이것(동성애)을 반대하는 목사님을 히틀러에 비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정신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과 이상일 후보를 비교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발언하여 물의를 빚었다.[5][6]

이에 녹색당은 “소수자 혐오하는 반인권적 정치를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녹색당은 “(김 대표의) 망언은 소수자 혐오에 젖은 일부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들이는 선거용”,“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기독자유당과 동성애 혐오 제1당을 놓고 경쟁하는 꼴”이라고 비판하는 등 각 좌우를 떠나 언론 각계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일었다.

인종차별 논란

2015년 12월 19일 서울 관악구에서 외국인 유학생들 및 당직자들과 연탄 배달 봉사를 하던 김 대표는 함께 행사에 참석한 나이지리아 출신 유학생에게 웃으며 농담조로 "니는 연탄 색깔하고 얼굴 색깔하고 똑같네"라고 말을 건넸다. 해당 유학생도 이 말을 웃으며 받아 넘겼고 행사도 무사히 끝났지만, 이 발언을 두고 많은 논란이 일어났다. [7] [8]

로이터통신사의 서울 특파원인 제임스 피어슨은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 담긴 기사 링크와 함께 “정말 어이가 없다”라고 언급하였고, 몇 시간 뒤 김무성 대표가 사과의 뜻을 전했다는 기사 링크에는 “트럼프 같아”라는 날선 반응을 덧붙이기도 했다. [9] [10] 국내 언론들 또한 가벼운 농담으로 볼 수 없는 인종차별 성격의 발언이라 보며 이 사건을 보도하였고, 이에 김무성은 페이스북을 통하여 현장에서 친근함을 표현한다는 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고려하지 못한 잘못된 발언이었다"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저의 불찰이다. 마음 깊이,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라고 사과하였다. [11]

아랍계 최대언론사 중 하나인 알-자지라와 나이지리아 매체인 뱅가드 등 현지 언론들은 한국의 유력 대선후보가 아프리카계 유학생에게 피부색을 조롱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뒤 사과했다고 보도했으며, [12] 나이지리아 유력 매체인 naiji.com에서는 "한국 정부는 나이지리아인들에 인종차별적인가? 질문을 받은 나이지리아 학생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답했다."라고 전하는 등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13]

그 외의 논란

  • 1998년 11월 서울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李胤承부장판사)는 3일 TRS(주파수 공용통신)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1996년 5월에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이 구형된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부산 남을)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를 적용,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및 추징금 2천만원을 선고했다. [14]
  • 2008년 1월 한나라당 인명진 윤리위원장(목사)이 부정부패 연루자는 물론 당 윤리위에서 징계를 받았던 인사들까지 공천 심사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5]
  • 2013년 6월 노무현 전대통령의 NLL발언 논란과 관련하여 지난 대선에 이미 당시 새누리당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이 대화록을 갖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16]
  • 2014년 6월 7일 추적60분 1113화 '내가 내는 등록금의 비밀'편에서 사학비리와 관련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신청된 이인수 수원대학교 총장의 증인 채택을 방해하고 막았다는 의혹을 받았으며 2013년 9월 국정감사를 한 달 앞두고 김무성의 딸 김현경씨가 수원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학부에 최연소 전임교수로 임명되었다는 의혹이 제기하였다.[17]
  • 새누리당 공천에 반대해 공천안 추인을 거부하였지만 후보등록 마감일에 3명은 추인하고 3명은 공천 추인을 거부했다.(20대 국회의원 선거 옥새투쟁 논란)

학력

비학위 수료

명예 박사 학위

경력

의정활동

서훈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4대 총선 국회의원(전국구) 14대 민주자유당 38.5% 7,923,718표 전국구 50번 낙선
제15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남구 을) 15대 신한국당 62.6% 38,970표 1위 부산 남구 국회의원 당선
제16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남구) 16대 한나라당 66.9% 75,215표 1위 부산 남구 국회의원 당선
제17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남구 을) 17대 한나라당 54.9% 38,826표 1위 부산 남구 국회의원 당선
제18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남구 을) 18대 무소속 49.69% 26,255표 1위 부산 남구 국회의원 당선
4·24 재보궐선거 국회의원(부산 영도구) 19대 새누리당 65.72% 27,981표 1위 영도구 국회의원 당선
제20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중구·영도구) 20대 새누리당 55.80% 43,447표 1위 부산 중구·영도구 국회의원 당선

가족 관계

  • 아버지 : 김용주 (1905 ~ 1985)
  • 어머니 : 강신팔
    • 누나 : 김문희 (1928 ~ )
    • 형 : 김창성 (1932 ~ )
    • 형 : 김한성 (1936 ~ )
    • 배우자 : 최양옥 (1956 ~ )
      • 장녀 : 김현진 (1981 ~ )
      • 차녀 : 김현경 (1984 ~ )
      • 장남 : 김종민 (1988 ~ )
    • 남동생 : 김남곤 (1953 ~ )

각주

  1. “성소수자단체 “혐오·차별에 동조한 김무성·박영선 행태 묵과 안해””. 경향일보. 
  2. "성소수자 인권 부정, 정치권 행태 비판한다". 교회와신앙. 
  3. “김무성, '동성애 합법화' 논란 표창원 저격…"제정신 아냐". 뉴스원. 
  4. “김무성,‘동성애 합법화’ 논란 표창원 저격…“제정신 아냐”출판사=동아일보”. 
  5. “김무성, "동성애 찬성 후보는 막아야 한다"출판사=허핑턴 포스트”. 
  6. “김무성, 표창원 겨냥 “동성애 찬성자가 당선되면 나라 꼴이…” 출판사=한겨례”.  |제목=에 라인 피드 문자가 있음(위치 35) (도움말)
  7. “김무성 "연탄·얼굴색깔 똑같네" 구설수…곧바로 사과”.  다음 글자 무시됨: ‘출판사연합통신’ (도움말)
  8. “김무성, 외국인 유학생에 "연탄·얼굴색 똑같네" 논란”. 한국일보. 
  9. “김무성 ‘연탄 발언’에 외신기자 비판… “트럼프 같다””. 머니위크. 
  10. “김무성 인종차별 발언에 한 외신 기자 “정말 어이가 없다” 비난”. 한국경제. 
  11. “흑인학생에 "연탄색깔"… 김무성, 논란 일자 사과”. 조선일보. 
  12. “김무성 대표의 '연탄 발언'에 심기불편한 나이지리아”. 더캣쳐. 
  13. “나이지리아 언론, 한국 정부 나이지리아인들에 인종차별적인가?”. 뉴스프로. 
  14. ““TRS 사업자선정 비리]한나라당 김무성의원 집행유예” 논란”. 동아일보. 
  15. ““한나라, '비리연루' 김무성-김현철 공천 딜레마” 논란”. 프레시안. 
  16. ““김무성, 대선 당시 NLL 회의록 이미 봤다” 논란”. 미디어오늘. 
  17. 추적60분 김무성, 사학비리 국정감사에서 외압행사 의혹...

바깥 고리

전임
이효계
제47대 내무부 차관
1994년 12월 26일 ~ 1995년 9월 21일
후임
정태수
전임
황우여
제13대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2014년 7월 14일 ~ 2016년 4월 14일
후임
원유철 (대표 권한대행)
전임
(부산 남구 갑)허재홍
(부산 남구 을)유흥수
제15대 국회의원(부산 남구 을)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신한국당한나라당
(부산 남구 갑)이상희
후임
(부산 남구)김무성
전임
(부산 남구 갑)이상희
(부산 남구 을)김무성
제16대 국회의원(부산 남구)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한나라당
후임
(부산 남구 갑)김정훈
(부산 남구 을)김무성
전임
(부산 남구)김무성
제17대 국회의원(부산 남구 을)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한나라당무소속
(부산 남구 갑)김정훈
후임
(부산 남구 갑)김정훈
(부산 남구 을)김무성
전임
(부산 남구 갑)김정훈
(부산 남구 을)김무성
제18대 국회의원(부산 남구 을)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무소속한나라당새누리당
(부산 남구 갑)김정훈
후임
(부산 남구 갑)김정훈
(부산 남구 을)서용교
전임
이재균
제19대 국회의원(부산 영도구)
2013년 4월 25일 ~ 2016년 5월 29일
새누리당
후임
(부산 중구·영도구)김무성
전임
(부산 중구·동구)정의화
(영도구)김무성
제20대 국회의원(부산 중구·영도구)
2016년 5월 30일 ~ 2020년 5월 29일
새누리당
후임
(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