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남자들] ‘여성의 몸은 ‘야한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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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9.19. 오후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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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뉴트럴』'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이하 남함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편집자 주]

2018년 6월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앞에서 열린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의 '페이스북 성차별적 규정 항의' 기자회견에서 한 회원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의 몸이 그저 신체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까. 엉덩이가 엉덩이로, 가슴이 가슴으로, 성기가 성기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까. 여전히 만연한 불법촬영 성범죄와 최근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성범죄로부터 우리는 성차별 구조가 아직 공고하고 여성의 몸이 일종의 자원처럼 거래되고 있는 현실을 확인했다. 이런 현실에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여성의 몸에 대한 중립을 선언해야 한다.

『바디 뉴트럴』의 저자 제시 닐랜드는 신체중립성을 '명확하고 편견 없는 공정한 렌즈를 통해 몸을 바라보는 연습이자, 도덕적 판단이나 해석, 투사, 부가적인 의미, 과도한 중요성 없이 몸을 객관적으로 보고 다루는 것'이라 정의한다. 여성의 몸이 자원화된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체 중립성이다.

ⓒ옐로브릭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자원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위안부는 국가의 자원으로 간주됐고, 단 한번도 근절된 적 없는 성구매는 경제력이라는 무력을 통해 여성을 사고판다. 여성의 몸은 객관적인 신체가 아니라, 가슴, 엉덩이, 성기 등으로 조각나서 하나의 기호로 작동하며 이른바 '야동'으로 불리는 포르노는 여성을 성적인 도구로 여겨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송출한다.

한발 더 나아가 불법촬영은 '국산 야동'으로 포장되어 돈 벌이 수단이 됐다. N번방 사건에서는 변태 성욕이 아닌 권력과 지배 그리고 모멸감 주기의 방식으로 성착취물을 생산해냈으며,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성범죄는 여성의 몸을 놀잇감처럼 여기고 있다.

여성의 몸이 자원으로 거래되는 이유는 여성의 몸이 '야한 것'이자 '음란한' 것으로써, 성적인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모종의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을 갖는 주체는 남성이다. 남성이 보기에, 여성의 몸은 야하고 음란한 것이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 된다. 성별 위계와 젠더 권력은 자연적이고 중립적으로 존재하는 여성의 몸을 음란하다고 규정했다. 최근 잇달아 보도된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성범죄의 가해자 다수가 '이렇게 큰 일인지 몰랐다'는 진술을 남기는 것을 보면, 여성의 몸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자원화됐는지 알 수 있다.

젠더와 위계,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더 나아가 짚어야 하는 것은 여성의 몸을 음란하다고 규정짓는 남성적인 시선이 남자 청소년, 청년 남성, 어쩌면 이 사회 전반의 인식 속에서 강력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 몸을 '야한 것'으로 규정하며 수단으로 삼는 시각이 판치는 사회는 여성을 동료 시민으로 대하는데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논의는 2018년 불꽃페미액션의 가슴 해방 시위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활동가들은 상의탈의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이를 막고 또 연행하려는 경찰에게 '무엇이 음란했는지', '무엇을 근거로 여성의 가슴이 음란하다고 여겨 공연음란죄를 적용하려는 것인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는 여성의 몸을 야하고 음란한 것으로 규정하고 구속하려는 억압에 대한 저항이자 여성의 몸을 남성적인 시선으로부터 구해내 여성의 것으로 돌려놓으려는 구체적인 실천이었다.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앞에서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페이스북의 성차별적 규정에 항의하는 상의 탈의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당시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들이 남긴 목소리를 통해 다시금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왜 여성의 몸은 유별나게 음란한 것으로 취급되는가. 우리의 몸은 왜 거듭 자원이자 상품처럼 여겨지며 평가되고 거래되는가를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비단 성범죄를 저지르지 말 것, 디지털 공간에서 개인의 신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주문하는 교육을 넘어서 몸을 둘러싼 현대 사회의 억압과 원인에 대해 사유하고 그로부터 저항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때 '바디 뉴트럴', 즉 신체중립성이란 개념이 필요하다. 여성의 몸을 야하고 음란한 것으로 해석하는 인식에 도전하고, 여성의 몸을 여성의 것으로 되돌려놓기 위한 교육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러한 신체중립성 교육이 가능하다면, 남성은 자신의 몸과 여성의 몸을 남성 권력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신 내 몸과 너의 몸의 경계를 인식하고 또한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할 몸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성은 여성의 몸에 주어지는 억압과 굴레의 형태를 인지하고, 이것이 지극히 차별적인 편견에 근거한 것임을 알게 되어 자신의 몸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젠더의 맥락을 경유한 신체중립성 교육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왜 여성은 아름다움으로 규정되는가?', '남성과 여성의 몸은 근본적으로 다른가?', '몸이 다르다면, 삶도 달라야 하는가?' 궁극적으로 신체중립성 교육을 통해 우리의 몸이 거래되고 평가되는 자원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고 세상과 소통하는 존재의 집임을 배울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몸을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몸에 새긴 젠더 폭력이란 상흔을 걷어내고, 몸을 공정하게 수용하기 위한 시작으로, 여성의 몸을 중립화할 것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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