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내레이션 낭독만 2개월 연습한 아이유, 특별한 이유 있었다
[이선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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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과 금명이를 연기한 배우 아이유. |
ⓒ 넷플릭스 |
1951년생의 애순, 그리고 1968년생 큰딸 금명이는 모두 아이유가 연기했다. 엄마의 과거가 딸의 현재가 되고, 딸의 현재가 또다시 엄마의 현재가 되는 이야기를 가족주의라는 말로 한정할 수 없을 터.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2일 오후 아이유를 만날 수 있었다. 2대에 걸쳐, 한 여성이 자신의 꿈을 꾸고 접고, 딸이 이뤄내는 서사시는 배우 아이유 본인에게도 큰 행복이었고, 영광이었다고 한다.
아이유는 드라마가 본격 제작되기 직전 각본을 쓴 임상춘 작가와 만났다. 공식 대본이 나오기 전 임 작가는 아이유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이야길 보여줬다. "애순이와 금명이 성격이 나와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는 게 아이유의 첫인상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출연이 성사됐고, 2023년 3월을 시작으로 꼬박 1년의 작업이 이뤄졌다.
금명이가 입에 달고 살던 "짜증나"... 이 말의 진짜 의미
"대본을 후루룩 읽었을 때 머릿속에 화면들이 다 떠오를 정도로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대사뿐이 아닌 상황이나, 날씨까지 정말 세세하게 표현됐다. 4막 '겨울' 편이 지난 3월 29일에 공개됐는데 그 직전까지 작가님에게 연락을 드릴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정신없으실 테고, 거기에 저까지 말을 보태는 게 실례라 생각해서 자제했는데 마지막 화까지 공개된 후에 참을 수가 없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초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이 판에서 놀아본 게 너무 신났고, 정말 감사하고 여한이 없다. 너무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너무 훌륭한 작품인데 저밖에 못돼서 죄송하다는 말도 드렸다."
부담과 도전감이 공존했기에 아이유는 그만큼 더 잘하고 싶었다고 했다. 청춘 시절의 애순, 그리고 금명의 청년기를 연기하기 위해 주어진 대본의 딱 두 배만큼 다른 버전들의 연기를 준비해갔다고. 장년의 애순을 연기한 배우 문소리와 2인 1역이었기에 함께 미리 만나 서로의 감정선을 나누는 과정도 가졌다고 한다. 아이유는 "김원석 감독님께 많이 여쭤봤고, 선배님, 동료분들에게 많이 의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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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 |
ⓒ 넷플릭스 |
"마음과 말이 다르게 나갈 때가 있잖나. 그리고 후회하고. 근데 내레이션으로 그 감정을 설명하는 식으로 작가님이 설정을 잘 해주셨다. 시청자분들 입장에선 16부를 다 보시면 그 내레이션의 주체가 인생을 다 살아본 금명이임을 아실 수 있을 것이다. 감독님께서도 연기할 때 그걸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내레이션 낭독만 2개월 연습한 것 같다. 방송 2주전까지도 작가님과 감독님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신 결과다."
그래서 금명의 '짜증나'라는 외마디가 풍부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아이유는 "정말 그 말은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 같다"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많이 하던 말이다. '나에게 잘 해주지마!', '엄마가 아픈데 왜 해!' 이런 느낌이잖나. 너무 잘 아는 마음이다. 최근에 아빠가 감기에 걸린 채로 무리하셨는데, 집을 청소하시는 모습에 '짜증나!'라는 말이 나오더라. 물론 아빠 최고야, 사랑해 이 말이 좋다. 근데 한 성대로 그 모든 말을 꺼낼 수 없어 '짜증나'로 나오는 거잖나. 임상춘 작가님도 그걸 잘 아시기에 대사로 써주시지 않았나 싶다.
이 작품을 연기한 배우인데 부모님 생각을 안 하면 불효녀 아닐까(웃음). 준비하면서 엄마 아빠에게 많이 여쭤봤다. 실제로 금명이와 엄마가 두 살 차이더라. '엄마도 이런 적 있었어?', '이해가 가?' 이런 말을 나누는데 엄마는 애순에게 많이 이입하셨던 것 같다. 사실 제가 나온 작품을 보실 때 딸이 잘했나, 실수한 거 없나로 보시는 분인데 처음으로 이번엔 작품 자체에 몰입해서 보셨다더라. 이게 이야기의 힘인가 싶었다. 저도 딸로서 짜증 내던 시기는 지난 것 같고, 한마디를 하더라도 더 예쁜 말이 있나 생각하게 됐다. 이미 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철 들 일들이 더 남았구나 싶다."
애순의 회복력
세대를 뛰어넘는 여성의 자립기 또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족 서사시. <폭싹 속았수다>를 평하고 분석하는 여러 표현들이 있다. 출연 배우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아이유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많은 이야길 담고 있어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긴 한데, 그래도 제게 가장 중요했던 건 살면 살아진다는 말이었다. 그 말 안에 가족·여성 이야기가 있고,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이야기가 있으며, 사랑 이야기가 있는 것 같더라. 드라마 엔딩이 너무 좋았던 게 관식의 퇴장은 아쉽지만 남은 애순이가 그 외로움을 온전히 겪잖나. 관식이 떠난 상황 속에서도 고개를 펴고, 허리를 곧게 펴서 시를 마저 다 쓰고 관식에게 자랑하잖나. 그럼에도 애순이는 살아갔다. 그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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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아이유). |
ⓒ 넷플릭스 |
"솔직히 일 말고 재밌는 게 없었다. 어찌 보면 그 즐거움만 좇은 것이다. 참 운이 좋게도 많은 분들이 성실하다며 좋게 봐주시는데 개인적으론 아쉬운 것도 물론 있다. 일을 인생의 전부처럼 여기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며 날 점검하는 시기를 가졌다면 또다른 음악이나 연기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근데 또 일 얘기네?(웃음)
애순처럼 20대, 30대의 제 삶을 담은 시집을 낸다면 어떤 제목을 붙이고 싶냐고? 너무 어렵지만 지금 그냥 떠오른 생각을 말씀드리면 '다시 연필을 깎겠습니다'다. 내 딴엔 치열하게 삶을 노래하고 반추했다 싶은데 30대가 되면서 날카로웠던 심이 좀 뭉툭해졌다 생각도 든다. 근데 이것대로 좋다. 뾰족한 연필도 좋지만, 뭉툭한 심으로 쓰는 재미도 있다. 다만 30대 중반으로 가는 차원에서의 다짐 같은 거다. 달려나가기만 한 이전과 달리 새로 깎은 연필로 뭘 써 내려갈지 다시 주목해주십사 하는 마음이다."
'뒷짐을 진채 따라갈래 / 그녀의 긴 발자국 / 서로를 이어 (서로를 이어) / How special we are (special we are) / 그 존재감에 입을 다무네/ 영원히 날 앞서는 / 그 이름은 Shh...'
지난해 2월 발표한 노래 'Shh..'가 바로 <폭싹 속았수다>를 경험한 직후 영감을 받아 직접 쓴 곡이다. 10대의 애순과 20대의 금명을 오롯이 온몸으로 연기한 아이유는 자신 내면에 맴돌던 이 주제를 세상에 보이게 됐다. 여기엔 애순 특유의 회복력이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주변의 무시와 차별, 이후 사랑하는 막내 아들마저 잃는 슬픔을 딛고 인생을 살아낸 애순 말이다. 아이유 스스로도 10대의 애순이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고백했다.
"애순이처럼 제가 낙관적 성격은 아니지만 애순이처럼 회복은 빨리하는 편 같다.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는데 힘든 일에도 좋게 생각하는 편이다. 지면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도 닮았다. 급장도, 어촌계장도 다 해 먹고 싶다는 욕심도 그렇고(웃음). 'Shh..'를 만들 때 <폭싹 속았수다>의 영향이 완전 컸다. 아마 드라마를 만나지 않았다면, 좀 더 나중에 곡이 나왔을 것 같다. 그만큼 촬영하며 정말 멋진, 그리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여러 여성들을 만난 덕이다. 다만, 이 곡을 쓸 때 너무 따뜻하기만 한 사운드보단 강인한 사운드가 들어갔으면 했다.
애순의 명대사가 많지만 모든 게 '난 너무 좋아'라는 대사로 귀결된다. 그 힘든 일을 겪고 나서도 애순이는 '나 지금 너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금명이의 입을 통해 '폭싹 속았수다'라는 말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으며 드라마가 닫히는 말을 하는데, 작가님께서 금명이에게 주신 거니까 의미가 제겐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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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과 금명이를 연기한 배우 아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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