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덮친 불길 막아 세웠다…'최후 방어선' 뒤엔 이 나무
"국립공원에 27년 근무했는데도 이런 산불은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청송 읍내와 주왕산 전체에 화점(火點)이 몇천 개가 됐어요."
2일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사무소 상황실에서 만난 안호경 소장은 지난달 25일 거대한 화마가 주왕산을 덮친 끔찍했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일주일이 지난 이날도 잔불을 끄기 위해 헬기와 소방 차들이 쉴 새 없이 주왕산을 오갔다. 탐방로는 출입이 전면 금지됐다. 안 소장은 “여전히 낙엽 아래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 있어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경북 산불은 국립공원에도 전례 없는 피해를 남겼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주왕산국립공원 내 피해 면적은 여의도의 11배가 넘는 3260ha로 추정된다. 공원 전체(1만 600ha)의 3분의 1 가까이가 화마에 휩쓸린 것이다. 1967년 국립공원 제도가 도입된 이후 산불 피해가 가장 컸던 건 재작년 3월 지리산 산불로 당시 피해 면적은 128ha이었다.
태풍급 강풍·소나무 많은 청송, 불길 키웠다
안 소장은 “태풍급 강풍을 타고 상상도 못 했던 산불이 순식간에 오면서 대피령을 내리고 일부만 사무소에 남았는데 다행히 불길이 여기까지 넘어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대전사 지켜낸 활엽수림 “산불 방어선 역할”
소나무 등 침엽수는 산불에 취약하고 불똥이 하늘로 튀어 오르는 비화(飛火) 현상을 일으킨다. 반면 활엽수는 불길이 땅을 따라 비교적 약하게 가기 때문에 산불의 완충지대가 될 수 있다. 국립공원연구원에 따르면, 주왕산국립공원에서 활엽수림은 6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침엽수림 비율은 34% 정도다.
현장 조사를 위해 이날 주왕산을 찾은 명현호 국립공원연구원 박사는 “대전사 주변에는 소나무림이 있기 때문에 불길이 남쪽으로 넘어왔으면 피해가 훨씬 더 컸을 것”이라며 “수분을 많이 머금은 습성림과 활엽수림의 활엽수들이 산불의 방어선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말했다.
━
“자연복원 동시에 문화재 지킬 내화수림 필요”
이번 산불로 국립공원이 입은 피해를 복원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주왕산국립공원은 멸종위기 산양의 서식지이자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곳으로 꼽힌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 결과, 황폐해진 산불 피해지가 산림의 형태를 갖추는 데는 30년 이상, 생태적 안정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최소 100년 이상이 걸린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국립공원 특성상 생물다양성이 회복될 수 있도록 숲을 자연 복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도 “사찰 같은 문화재나 공원 내 마을 주변에는 불에 강한 내화수림을 조성하는 등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청송=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랑해" 그 말을 진짜 들었다…임종 직전 차오른 남편 눈물 | 중앙일보
- "뒤돌아 XX 하는건가" 안영미 생방 중 욕설…사과했지만 결국 | 중앙일보
- 남편이 성폭행한 10대, 60대 아내는 4번이나 찾아가 "합의를" | 중앙일보
- [단독]"열사? 투사? 폭력 절대 안돼" 朴파면날 숨진 시위자 유족 | 중앙일보
- 똥 기저귀 교사 얼굴에 '퍽'…"기회 달라" 눈물 호소한 부모 결국 | 중앙일보
- 나경원 "4대4 기각, 野 의회독재 보면 尹파면할 정도 아니다" [스팟인터뷰] | 중앙일보
- 정성호 "8대0 인용, 진보·보수 아닌 법치주의 수호 문제" [스팟인터뷰] | 중앙일보
- 주먹구구 관세율 산정?…韓 상호관세 결국 26%→25% 재조정 | 중앙일보
- 1박 100만원에도 빈 방 없다…불황 속 제주 프리미엄 전략 | 중앙일보
- '오겜' 오영수, 2심서도 실형 구형…"80년 지킨 인생 무너졌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