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토리] 기형도 시인 연극 '기형도 플레이'가 보여주고 싶은 것

이세영 2025. 4. 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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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영원한 청춘 시인 기형도(1960∼1989)는 사후에 더 널리 알려진 예술인이다. 1989년 그가 사망한 해에 출간된 유고집 '입 속의 검은 잎'은 30여년간 35만부 이상 팔렸다.

이후 2019년에는 기형도 30주년을 기념해 시 전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가 출간됐다. 사실상 청년세대 시인으로서 이토록 오랫동안 여러 편의 시가 읽히는 시인은 그가 유일하다.

시인은 옹진군(현재 인천광역시)에서 출생 후 6살 시절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로 이사했다. 유년기의 기억과 시작의 지형적 토대는 소하리에 있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시를 썼고 학업에도 충실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중앙일보에 입사해 기자로 일했고 입사 다음 해 등단해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세대를 뛰어넘은 공감은 연극으로 이어졌다. 극단 맨씨어터는 창작집단 독'에 속한 작가 9명이 기 시인의 시 9편에서 얻은 사유를 바탕으로 쓴 단편 희곡을 무대에 올렸다.

연극 '기형도 플레이'는 이렇게 탄생했다. 지난 2023년 초연 때 전석 매진을 기록할 만큼 화제성도 컸다.

시인의 시를 소재로 한 단편 연극은 옴니버스 형태로 매일 다른 공연을 선보이는 것도 작품의 특징이다.

부부의 엇갈린 기억을 다루는 '빈집'(유희경 작), 비정규직원을 해고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기억할 만한 지나침'(조정일 작),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게 된 대학생들의 이야기 '소리의 뼈'(조인숙 작), 속수무책으로 늙어가는 작가 지망생의 삶을 주제로 한 '질투는 나의 힘'(천정완 작), 책 한 권을 놓고 투닥거리는 자매의 비밀을 그린 '흔해빠진 독서'(박춘근 작), 아파트 재개발이 마지막 희망인 부부의 모습이 담은 '바람의 집'(임상미 작), 서점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이 겪는 기묘한 이야기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김현우 작), 늦은 밤 장례식장에서 죽은 아버지와 만나는 남자의 이야기 '위험한 가계 1969'(고재귀 작), 서울역을 출발한 기차에서 만난 두 남자가 펼치는 '조치원'(김태형 작) 등이다.

극단 맨씨어터의 우현주 대표는 "당장 끝나버릴 것 같은 인생, 반드시 패배할 것 같은 무서운 삶의 장면들이 이어진다"며 "하지만 공포에 질린 눈들이 향하는 방향은 희망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는 초연 때 참여한 배우인 이석준, 박호산, 우현주, 이동하, 이은, 김세영과 새로 합류한 서정연, 조한철, 강진휘, 차용학, 신성민, 이경미, 박승현 등이 출연한다. 무대와 매체를 넘나들며 활약 중인 배우들이 9개의 작품 속 22명의 인물로 분한다. 8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 배우 조한철의 출연도 눈길을 끈다.

제작진은 서울 대학로의 연습실을 찾아 '기형도 플레이'의 뜨거운 현장을 찾아가 봤다.

초연에 이어 '기형도 플레이'의 감독을 맡은 김현우 연출은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지점은 이 시대에도 기형도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며 "기 시인을 전혀 모르는 관객분들도 오셔서 즐겁게 봐주시는 걸 보고 대단히 기뻤다"고 말했다.

이 작품으로 8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는 배우 조한철은 "좋은 작품에 복귀작으로 출연하게 돼 영광스럽기도 하고 내 모습이랑 많이 닮아있는 부분이 있어 공감이 잘 됐다"며 "작가가 써준 인물이 잘 와닿아 즐겁게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슬기로운 감빵 생활'로 잘 알려진 배우 박호산도 "연극의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항상 같다. 그 안에서 갈등이 생기고 그것이 해소될 때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끼시기도 하는데 그런 데서 큰 보람을 느낀다"는 소감을 전했다.

박호산과 함께 초연 때 출연하고 이번 재연 때도 함께 공연하는 배우 김세영은 "'기형도 플레이'에 출연하게 돼 사전에 시인의 시도 읽고 공부하면서 이분은 약간 경계에 서 있는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에서 서점 알바생이 책방에 책을 훔치는 도둑한테 '작가는 몰라도 캐릭터는 이유를 안다'라는 말이었다고 소개한 뒤 "이 대사를 하며 시인처럼 저도 항상 어딘가의 사이에 놓여 있는 느낌이 좋았다"고 말했다.

가슴 시린 청춘의 상징이자 상실의 아이콘으로 당대 젊은이를 위로하던 기형도 시인의 메시지를 담은 연극 '기형도 플레이'는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기획·제작총괄 : 홍제성, 진행·내레이션 : 유세진, 영상 : 박주하, 촬영 협조 : 기형도 문학관, 극단 맨씨어터, 연출 : 박소라>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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