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주 6일, 하루 2시간 넘게 경기를 한다.
매일 승패가 갈리고 한 타석 한 타석마다 희비가 엇갈린다. 어떻게 보면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든 스포츠다.
실패를 기억하지 못하면 발전이 없고, 모든 걸 기억하고 있기에 실패의 순간이 많다. 10번 타석에 들어가서 7번 실패해도 3할 타자가 아닌가.
손이 떨리는 추위에도 숨이 막히는 더위에도 야구는 계속된다. 아무리 평정심이 좋은 선수라고 해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다.
“야구는 멘탈”이라며 변우혁이 웃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프링캠프에 가면 선수들의 표정을 우선 살피게 된다. 경기 때 표정도 중요하지만 훈련을 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표정은 더 중요하다. 표정에는 많은 데이터가 담겨 있다.
단순한 몸 상태 뿐만 아니라 준비 상황이나 마음도 엿볼 수 있는 나름의 데이터다. 이 데이터에서 지난해와 올 시즌 가장 많은 차이가 난 선수는 바로 변우혁이었다.
호주 캔버라에서의 변우혁과 미국 어바인의 변우혁은 다른 사람 같았다.
올 시즌 변우혁은 캘리포니아 햇살처럼 밝았다. 사실 팀 상황을 보면 올해 캠프가 변우혁에게는 더 정글인데도 말이다.
변우혁은 지난 시즌 1루와 3루를 오가면서 우승 멤버가 됐다.
외야수 이우성이 1루수 변신을 해야 했던 팀 상황, 그래서 변우혁은 1루에서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올 시즌 객관적인 상황은 좋지 못했다.
3루에는 ‘MVP’ 김도영이 버티고 있고, ‘빅리거’ 패트릭 위즈덤을 영입하면서 변우혁이 직격탄을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캠프의 변우혁은 웃고 있었다.
지난 시즌 실패 경험이 변우혁에게는 변화의 계기가 됐다.
변우혁은 “지난해 캠프에서는 혼자 힘들어했다. 전반기에 그 영향이 있었다. 혼자 힘들어하다가 전반기가 다 꼬였다. 나중에 편하게 마음먹고 하니까 잘 됐다. 재작년 캠프 때는 즐기고 있었는데, 지난해에는 혼자 쫓기고 있었다”라고 돌아봤다.
혼자 쫓기면서 변우혁은 중요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결과도 만들지 못했고, 기다림의 시간을 성장의 발판으로도 삼지 못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변우혁은 웃었다. 그리고 위기를 배움의 기회로 삼았다. 생각을 바꾼 변우혁은 위즈덤을 처음 만난 날 먼저 배움을 요청했다.
“위즈덤이 온다고 했을 때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야구는 어떻게 될지 모르기도 하고, 1루에 외국인 선수가 온다고 해서 시합을 못 뛰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일단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날부터 통역 형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싶으니까 알려달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위즈덤이랑 친해지면서 보고 배우는 것도 많다.”
변우혁은 빅리그라는 전쟁터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의 압박을 느껴봤던 위즈덤을 통해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멘탈을 배웠다.
“위즈덤이 타석에 들어갈 때 너무 잘하려 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자신 있게 들어가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으로 뻔뻔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려줬다. ‘뭐 어때, 내가 변우혁인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들어가라고 했다.”
변우혁은 “나 변우혁이야”라는 마음으로 캠프를 지나 시범경기를 준비했고, 기다렸던 개막을 맞았다.
열심히 마음을 다졌지만 사실 다짐처럼 웃으면서 시즌을 맞았던 것은 아니다.
열심히 준비했던 변우혁은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만큼 또 사람이라 변우혁에게는 마냥 웃을 수 없는 시작이기는 했다.
다짐과는 다른 표정으로 시즌을 열었지만 변우혁은 다시 또 ‘야구 몰라요’를 배웠다.
개막 시작과 함께 김도영과 박찬호가 연달아 부상을 당하면서 변우혁은 생각보다 빨리 1군에서 기회를 얻었다.
초심으로 시작한 변우혁의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졌고, 그 차이는 결과로 나왔다.
의식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괜히 친정팀을 만나면 힘이 들어가곤 했지만 힘을 뺀 변우혁은 한화를 상대로 했던 3월 마지막 경기를 멀티히트로 마무리하면서 팀 스윕을 막았다.
이후 KIA의 부진에도 변우혁은 열심히 타점을 올리고, 결승타를 만들면서 팬들을 웃게 했다.
변우혁은 ‘확률’싸움을 하고 있다.
눈과 손, 무엇이 달라졌냐는 질문에 변우혁은 손을 이야기했다.
“방망이 나가는 게 다른 것 같다. 대기 타석에서 어떤 공을 어떻게 쳐야 할지 생각을 하면서 내 것을 정립하고 들어간다. 작년에는 타석에서 생각이 많았다. 뭘 칠까, 어떤 코스를 칠까 이런 생각을 하느라 잘 안됐던 것 같다.”
수싸움으로 확률을 높인 변우혁은 초구 싸움으로도 결과를 바꾸고 있다.
“작년이랑 올해 퓨처스에서 할 때 보면 빠른 카운트에서 내가 승부를 보려고 했다. 초구에 칠 수 있는, 치기 좋은 공이 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다.”
투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높인 변우혁. 결국은 그건 또 멘탈로 연결된다.
“잘했을 때를 생각하면 빠른 카운트 승부가 잘 맞는 것 같다.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확률을 높이는 것 이런 것들은 전체적으로 멘탈적인 부분인 것 같다.”
스스로 업그레이드를 한 변우혁에게는 좋은 멘탈 코치도 있다.
한화에서 나란히 KIA로 이적한 투수 김도현은 ‘소심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다
“입단 동기이기도 했고 2군 생활을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그러다 같은 해, 같은 팀으로 트레이드되면서 더 친해진 계기가 됐다. 내가 도와줄 건 도와주고, 도현이가 안 좋으면 내가 도와주기도 한다.”
비록 김도현이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5.1이닝 2실점(1자책점)으로 마운드를 지켜주고, 변우혁이 결승타를 장식한 8일 롯데전은 그래서 두 사람에게는 더 의미가 있다.
“도현이랑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둘이 같이 잘해서 너무 좋다고. 작년에 도현이 던지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에 예상을 했다. 막판 모습이 좋았기 때문에 지금 활약을 어느 정도 생각했다. 지금 세 경기했는데 평균자책점이 1점대다. ‘역시는 역시다’라는 생각을 했다.”
팀의 위기가 자신에게는 기회가 됐고, 변우혁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잘 흘러왔다.
하지만 야구는 롤러코스터다.
뜨겁던 타격감이 한순간에 식기도 하고 항상 누군가는 내 자리를 노리고 있다.
김도영의 복귀 시계도 빨라진 만큼 변우혁은 다시 또 넘겨야 할 위기의 순간을 맞을 것이다.
변우혁은 그래서 좋은 순간들을 열심히 머리에 담고 있다.
“무조건 또 다른 위기는 온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최대한 기억을 하려고 한다. 성범 선배님도 그렇고 원준이 형도 지금 적어두든지 해서 잘 기억하라고 한다. 분명히 페이스는 떨어지니까 그때 잘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를 해주셨다. 지금 느낌 잘 기억하려고 하고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잘 기억하려고 해도, 당장 위기가 닥치면 준비했던 것과는 다르게 조급한 마음에 다시 또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변우혁은 배웠다.
기회는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온다는 것. 그리고 그 기회는 다른 누군가 아닌 내가 잡는다는 것. 승부는 결국 내 자신과 한다는 것.
아직은 포커페이스가 아닌, 미완의 변우혁이 어떤 표정으로 봄을 나고 여름을 지나 2025년 가을을 맞을지 궁금하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