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메이저리그 노사협약(CBA)은 새로운 규정이 추가됐다.
개막 로스터에 포함된 유망주가 해당 시즌 수상하면 이듬해 드래프트 지명권을 받게 된다. 신인왕 혹은, 연봉 조정 자격을 얻기 이전까지 MVP와 사이영상 최종 후보에 들면 지명권을 확보할 수 있다. 지명 순번은 1라운드 직후로 대단히 높다. 배당된 보너스 풀이 약 300만 달러다. 서비스타임 문제로 승격이 고의 지연되는 유망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자격을 아무나 주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신인 자격을 갖춰야 한다. 타자는 130타수, 투수는 50이닝, 또한 26인 로스터 등록일수가 45일이 넘지 말아야 한다. 이를 넘기면 신인이 아니기 때문에 유망주 지위도 사라진다.
외부의 인정도 받아야 한다. 단순히 신인이라고 해서 다 해당되지 않는다. <MLB파이프라인(이하 파이프라인)>과 <베이스볼아메리카(이하 BA)> <ESPN>은 시즌 전 유망주 TOP 100을 발표한다. 유망주 평가에 공신력이 있는 이 세 곳 중 두 곳에 이름을 올려야 유망주로 간주한다. 누가 봐도 기대가 되는 유망주여야 지명권을 받을 수 있다.
이 지명권을 '유망주 승격 보상권(Prospect Promotion Incentive)'이라고 한다. 영어 약어 'PPI'로도 자주 쓰인다.
유망주들은 마이너리그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와야 될 실력인데, 선수 보유 기간을 늘리려고 일부러 방치하는 경우들이 잦았다. 이 제도에 불만을 터뜨린 선수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유망주 승격 보상권이 마련됐다. 구단들도 최근 더 부각되는 드래프트 지명권을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대안책으로 불린다.
가장 먼저 유망주 승격 보상권을 따낸 팀은 시애틀이었다. 2022년 개막전 로스터에 훌리오 로드리게스를 넣었고, 그 해 로드리게스가 신인왕을 수상하면서 이듬해 드래프트 전체 29순위 지명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그 지명권으로 고교 외야수 자니 팔메로를 뽑았다. 팔메로는 올해 <BA> 유망주 전체 70위, 시애틀 팀 내 3위에 오른 기대주다.
지난해 애리조나와 볼티모어도 유망주 승격 보상권을 받았다. 코빈 캐롤과 거너 헨더슨이 신인왕을 수상했다. 두 선수는 2022년 8월말에 데뷔했지만, 신인 요건을 벗어나지 않은 덕분에 2023시즌 신인왕을 받았다. 지난해 드래프트에서 애리조나는 대학 외야수 라이언 왈드슈미트, 볼티모어는 대학 유격수 그리프 오페럴을 데리고 왔다. 왈드슈미트는 올해 애리조나 8위, 오페럴은 볼티모어 10위 유망주로 데뷔했다.
하지만 작년에 신인왕을 받은 두 선수는 유망주 승격 보상권을 가져오지 못한 점이 흥미롭다. 피츠버그 폴 스킨스는 개막전 로스터에 들어가지 않았다. 5월 중순에 데뷔하면서 한 시즌을 온전히 메이저리그에서 보내야 하는 조건을 완수하지 못했다. 양키스 루이스 힐은 중고 신인이었던 탓에 개막 전 발표한 유망주 TOP 100에서 모두 제외됐다.
오히려 유망주 승격 보상권을 얻어낸 선수는 '3년차' 바비 위트 주니어였다. 위트는 마지막으로 유망주 승격 보상권을 받을 수 있었던 지난해, MVP 2위를 차지함으로써 캔자스시티에게 전체 28순위 지명권을 선물했다. 덕분에 캔자스시티는 올해 뛰어난 아마추어 선수를 영입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떤 선수가 신인왕에 도전할까. 유력한 후보들을 알아봤다.
사사키 로키 (다저스 & 우완 & 우투우타)
<BA 1위> <파이프라인 1위> <ESPN 1위>
외국리그를 경험하고 온 선수는 신인왕 경쟁에서 불리하다. 보통 6년 이상 채우고 오기 때문에 '중고' 신인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사사키는 일본에서 4시즌만 뛰고 오면서 여느 신인들처럼 분류된다. 받은 계약도 국제 아마추어 수준에 해당한다.
한동안 <BA>는 외국리그를 겪은 중고 신인들을 유망주 순위에서 배제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사사키는 위에 언급한 이유를 들어 순위에 포함시켰다. 사사키는 사무국이 유망주 승격 보상권에 활용하는 세 기관 유망주 순위에서 모두 전체 1위에 올랐다. 이러한 기대를 받는 유망주 투수는 대단히 오랜만이다.
스프링캠프 두 경기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던 사사키는, 일본 도쿄 시리즈 2차전 선발 등판으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1회부터 포심 구속 100마일을 찍으면서 무시무시한 구위를 선보였다. 하지만 2회부터 제구가 흔들리면서 볼넷 5개를 허용했다. 56개 투구 수를 가져간 사사키는 3이닝 1실점으로 데뷔전을 마쳤다.
구위는 명불허전이었다. 빠른 공뿐만 아니라 스플리터도 칭찬 일색이다. 특히 스플리터 회전수가 메이저리그 평균 1,300회보다 훨씬 적은 500회 정도다(데뷔전 스플리터 평균 회전수 513회). 그러다 보니 스플리터가 마치 너클볼처럼 움직이기도 했다.
사사키는 완성형 투수가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더 발전해야 한다. 포심, 스플리터와 함께 레퍼토리를 구성해야 할 슬라이더의 완성도가 관건이다. 일본 시절 줄곧 지적됐던 내구성 우려도 지워야 신인왕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변수는 이닝 수다. 각별한 관리를 받게 될 사사키는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나오는 경기에서 임팩트가 강력해야 한다. 유리하면서도, 불리하다.
다저스는 팀 역대 18명의 신인왕을 배출했다. 메이저리그 팀들 중 가장 많았다. 하지만 투수 신인왕은 1995년 노모 히데오 이후 나오지 않고 있다. 노모는 일본인 선발 투수로는 유일한 신인왕 수상자이기도 하다. 사사키가 그 계보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딜런 크루스 (워싱턴 & 외야수 & 우투우타)
<BA 6위> <파이프라인 4위> <ESPN 6위>
크루스는 루이지애나 주립대 시절부터 이름을 알렸다. 아마추어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되는 골든 스파이크상을 수상했다. 뛰어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공격 수비 주루 모두 능수능란한 면모를 보였다. 외야 3개 포지션을 모두 맡을 수 있는 것도 강점이었다.
유망주는 20/80 점수를 기준으로 각 항목별 등급을 매긴다. 20점이 최하, 80점이 최고, 50점이 평균이다. 크루스는 <BA> 기준 타격(65점)과 파워(60점) 주루(70점) 수비(55점) 송구(60점) 모두 평균 이상이었다. 균형 잡힌 선수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크루스는 작년 8월27일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31경기 132타석을 소화했지만, 여전히 신인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111타수, 로스터 등록 35일). 지난해 메이저리그 성적은 타율 .218 3홈런, OPS 0.641에 머물렀지만, 세부지표에서 더 좋아질 가능성을 암시했다.
승부욕도 불태우고 있다. 2023년 드래프트 전체 2순위였던 크루스는, 자신보다 먼저 불린 1순위 폴 스킨스의 신인왕 수상을 지켜봤다. 둘은 2002년생 동갑내기로 루이지애나 주립대 시절 동료였다. 올해는 크루스가 스킨스의 뒤를 잇는 주인공이 되려고 한다.
잭슨 조브 (디트로이트 & 우완 & 우투우타)
<BA 3위> <파이프라인 5위> <ESPN 7위>
사실상 리그 투수 최고 유망주다. 지난해 상위싱글A에서 출발했고, 더블A와 트리플A를 거쳐 메이저리그 데뷔전까지 가졌다. 한 시즌에 4개 레벨을 주파하면서 대단히 빠른 발전 속도를 보여줬다. 마이너 도합 21경기(21선발) 평균자책점은 2.36이었다.
조브는 최신 트렌드에 부합하는 투수다. 최고 100마일을 찍을 수 있는 포심을 앞세워 좌우 움직임이 큰 80마일 초반대 스위퍼, 80마일 후반대 커터, 여기에 80마일 중반대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4가지 구종의 궤적이 각기 달라서 반대손 좌타자에게도 무기가 될 수 있다. <BA>는 20/80 점수에서 포심과 스위퍼는 70점, 커터와 체인지업은 60점을 줬다. 4가지 구종이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주무기가 될 수 있다.
잭 플래허티가 돌아온 디트로이트는 조브가 없어도 선발진을 구축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브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분위기다. 한편 조브는 최근 인터뷰에서 자신을 어필하는 패기 넘치는 말을 했다.
"나는 스트라이크 존 가장자리에 꽂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내 공은 강력하다. 만약 당신이 이 공을 맞히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확률상 그러지 못할 것(I’m done with trying to dot a gnat’s [butt],” Jobe said afterwards. “Here’s my stuff. If you hit it, great. Odds are, you’re probably not)"
로만 앤서니 (보스턴 & 외야수 & 우투좌타)
<BA 2위> <파이프라인 2위> <ESPN 2위>
현재 가장 가치가 높은 유망주다. 보스턴이 밤비노의 저주를 깨뜨린 2004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2022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보스턴의 지명을 받았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기량을 뽐낸다. 그래서 지난해 20세 시즌에 트리플A까지 올라왔다. 성적도 훌륭했다. 35경기 타율 .344 3홈런, OPS 0.983이었다. 164타석 동안 기록한 31볼넷, 31삼진도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트리플A 인터내셔널리그(IL)에서 160타석 이상 소화한 타자는 총 302명. 이 가운데 앤서니는 조정득점생산력 162로 리그 3위에 올랐다. 참고로 리그 1위 미키 개스퍼(179)는 28세 선수다(2위 21세 제임스 우드 wRC+ 176).
앤서니의 성장세는 무섭다. 당장 개막전 로스터에 진입하지 못해도, 작년 행보를 이어간다면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보스턴은 앤서니를 필두로, 크리스티안 캠벨(파이프라인 7위)과 마르셀로 마이어(파이프라인 12위) 같은 리그 정상급 유망주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 유망주 트리오가 올해 보스턴을 바꿀 수 있는 조커들이다.
맷 쇼 (컵스 & 내야수 & 우투우타)
<BA 35위> <파이프라인 19위> <ESPN 23위>
시카고 컵스 최고 유망주. 신장은 178cm로 작은 편이지만, 정확성과 파워, 스피드가 눈에 띈다. 어떠한 구종도 방망이에 맞히는 능력이 탁월하다. 브레이킹 볼(슬라이더 스위퍼 커브)과 오프스피드 피치(체인지업 스플리터)에 대한 스윙 궤적 조정도 잘 해낸다는 증언이다. 지난해 더블A 86경기 타율 .279 14홈런, OPS 0.841을 기록한 뒤 트리플A로 승격됐고, 트리플A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였다(35경기 타율 .298 7홈런, OPS 0.929).
지난해 컵스는 3루수 도합 승리기여도가 0이었다. 공격력을 측정하는 조정득점생산력도 평균 100에 미치지 못했다(wRC+ 83). 이 약점을 없애기 위해 알렉스 브레그먼을 노렸지만, 브레그먼은 보스턴 유니폼을 입었다. 대신 영입한 저스틴 터너(40)는 젊은 선수들을 뒤에서 밀어줘야 할 베테랑이다. 이에, 쇼는 올해 충분한 기회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 기회를 잘 살려 신인왕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해야 한다.
제이선 도밍게스 (양키스 & 외야수 & 우투양타)
<BA 28위> <파이프라인 21위> <ESPN 24위>
2년 전에 이미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을 무려 저스틴 벌랜더에게 때려냈다. 계약 때부터 특급 유망주로서, 비교 대상이 마이크 트라웃이었다. 도밍게스의 별명 '화성에서 온 사나이'도 그의 특별함을 알려준다.
원래 도밍게스는 지난해 본격적인 데뷔 시즌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토미존 수술을 받은 데 이어 사근 부상으로 복귀가 늦어졌다. 타고난 재능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간혹 경기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모습으로 비판 받았다.
올해 후안 소토가 이적하면서 주전 자리는 보장됐다. 기대에 부응하는 활약을 펼치는 동시에, '숙적' 보스턴 유망주 트리오에 대항하면서 팀의 자존심을 지켜줘야 한다.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