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이정후, 달라지지 않은 이정후

이정후 (샌프란시스코 SNS)

샌프란시스코 이정후(26)의 활약이 놀랍다.

이정후는 8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시즌 타율이 0.250으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최근 안타를 몰아치면서 타율을 0.333로 끌어올렸다. 개막 첫 9경기 연속 출루는 팀 내 유일하다.

지난해 이정후는 첫 홈런이 빨리 나왔다. 3경기 만에 데뷔 첫 홈런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타격감이 오래 가진 않았다. 첫 9경기 타율은 0.200, OPS는 0.554에 불과했다. 정확성을 우선시해야 되는 이정후로선 홈런을 빼면 그다지 좋을 게 없는 성적이었다.

올해 이정후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어깨 수술로 빠진 동안 팀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다. 이정후를 영입한 수뇌부가 물러나고, 버스터 포지 사장을 필두로 한 새 운영진이 출범했다. 대형 계약을 한 이정후의 입지가 당장 흔들릴 일은 없지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시범경기 초반은 좋았다. 두 경기만에 홈런이 나오면서 건강하게 돌아왔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 다음 홈런도 빨리 추가하면서 심상치 않은 활약을 예고하는 듯 했다.

하지만 등에 담이 온 뒤로 페이스가 떨어졌다. MRI까지 찍을 정도로 통증이 극심했다. 경기를 열흘 넘게 빠지다 보니 정규시즌 개막전을 놓칠 수 있다는 전망도 전해졌다. 다행히 시범경기 막판에 돌아왔지만, 타격감은 한풀 꺾인 상태였다. 첫 8경기에서 20타수 8안타(0.400) 2홈런을 쳤던 이정후는, 이후 6경기 16타수 1안타(0.062)에 그쳤다.

차이
개막전에서 이정후는 안타가 없었다. 하지만 볼넷 두 개를 얻어낸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이정후는 시범경기 중반부터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투수들의 공을 지켜볼 기회가 없었다. 여기에 밸런스가 흔들리면서 타격감도 떨어져 있었다. 무리해서 달려들기보단 차분하게 공을 보는 타석이 필요했다.

이 날 상대 선발은 100마일 공을 던지는 헌터 그린(신시내티)이었다. 이정후는 그린의 폭발적인 구위에도 당황하지 않고 볼넷을 기록했다. 두 번째 볼넷은 불펜 투수 이안 지보에게 뺏어냈다. 이 타석에서 이정후는 불리한 볼카운트(0-2)로 출발했지만, 8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걸어나갔다. 다른 유형의 투수를 만나더라도 타석에서의 침착함이 돋보였다.

이정후는 다음 경기에서 첫 안타를 신고했다. 좌완 닉 로돌로의 싱커를 공략해서 내야를 빠져나가는 타구를 만들었다. 이 안타는 팀의 추가점을 안겨주는 적시타였다.

올해 이정후는 루상에 주자가 있을 때 자주 들어설 예정이다. 작년에는 1번 타자로 기용됐지만, 올해는 3번 타자를 맡게 된다. 지난해 팀의 골칫거리였던 득점권 성적을 높여야 한다. 정확성이 뛰어난 이정후를 앞세워 기회를 살리겠다는 밥 멜빈 감독의 생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2루에 주자가 있을 때 첫 안타를 친 점은 고무적이었다.

한편, 이정후는 현재 루상에 주자가 있을 때 14타수 5안타(0.357) 득점권에 주자가 있을 때 9타수 3안타(0.333)를 기록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가 바라던 모습이었다.

과감함
지난해 이정후는 신중했다. 처음 접하는 선수들과 리그, 환경, 문화로 인해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작년보다 저돌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원래 이정후는 초구에 방망이를 잘 내지 않았다. 지난해 초구 스윙 비율이 17.1%였다. 리그 평균(29.9%)보다 한참 낮았다. 그러나 올해는 초구부터 방망이를 내는 타석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리그 평균에 가까운 28.2%로 높아졌다. 아무래도 1번 타순에서는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는지 확인이 필요했는데, 3번 타순은 앞선 두 타자들이 정보를 제공해줌으로써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들어설 수 있었다.

투수의 실투는 'Meatball'이라는 별칭이 있다. 타자에게 좋은 '먹잇감'이라는 의미다. 지난해 이정후는 이 실투를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2024 실투 스윙률 하위 (150타석)

56.8% - 주니어 카미네로
56.3% - 조이 오티스
53.4% - 조나 브라이드
48.9% - 이정후


초구는 투수와 타자 모두에게 중요하다. 유리한 볼카운트를 선점하기 위한 '거점'과도 같다. 지난해 타자들은 초구 스트라이크로 출발했을 때 평균 타율이 0.214, OPS는 0.602였다. 그러나 초구를 볼로 출발한 타석들은 평균 타율 0.255, OPS는 0.802였다. 성적 차이가 분명했다.

그래서 보통 투수들은 초구로 스트라이크를 던지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실투로 분류되는 구간에 공이 많이 들어온다. 지난해 타자들의 초구 상대 성적이 크게 높아지는 건 여기서 비롯된다(평균 타율 0.333, OPS 0.905).

이정후 (샌프란시스코 SNS)

올해 이정후는 더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내고 있다. 이에 50%도 채 되지 않았던 실투 스윙률이 올해 73.3%까지 높아졌다. 투수가 카운트를 잡으려고 '쉽게' 던지는 공을 이정후는 허락하지 않는다. 현재 성적은 작년보다 과감해진 타격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지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은 건 있다. 공을 맞히는 재주다. 지난해 이정후는 공을 맞히는 재주는 탁월했다. 헛스윙률이 9.6%로 한 자릿수였다. 15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들 가운데 이정후보다 헛스윙률이 낮은 타자는 루이스 아라에스(6.9%)와 스티븐 콴(8.2%) 뿐이다.

올해 이정후는 공격성이 짙어지면서 헛스윙률이 살짝 높아졌다. 그러나 15.3%는 리그 상위 9%에 해당할 정도로 낮은 수치다. 타석 당 삼진율 역시 지난해 8.2%에서 올해 15.4%로 늘었지만, 리그 평균 21.1%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편에 속한다.

나쁜 공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무턱대고 아무 공이나 스윙하면 결과가 좋을 수 없다. 그건 과감하게 아니라 무모한 타격이다.

좋은 타구를 만들려면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는 공을 대응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아웃존 공은 참아내야 한다. 타자가 아웃존 공에 쫓아나가는 것을 두고 'Chase'라고 정의한다. 이정후는 스윙이 늘어났지만, 아웃존 공에 쫓아나가는 스윙은 오히려 줄었다. Chase%가 지난해 26.7%에서 올해 20.9%로 떨어졌다.

이처럼 공을 선별하는 작업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작년보다 스트라이크 존 설정을 잘해주면서 쳐야 될 공과 치면 안 되는 공을 구분하는 중이다.

이는 타구의 질에서도 드러난다. 평균 타구속도는 지난해 89.1마일에서 올해 90.6마일로 살짝 빨라졌지만, 강한 타구(Hard Hit)로 분류되는 '95마일 이상' 타구 비율이 지난해 41.8%에서 올해 50%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만약 이정후가 그저 방망이를 많이 휘둘렀다면 기대보단 우려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정후는 자신의 강점은 지키면서 아쉬운 점은 보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보다 한 단계 진화했다.

물론, 아직은 극초반이다. 야구에서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가 믿음을 얻으려면 더 많은 표본이 필요하다. 95마일 이상 강속구를 대처한 성적도 지난해 24타수 5안타(0.208)에서 올해 12타수 4안타(0.333)가 됐지만, 유의미해지기 위해선 누적이 더 쌓여야 한다.

KBO리그 '천재 타자'가 메이저리그에서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시련이 있었지만, 그 시련에 굴하지 않았다. 우리는 더 강하게 돌아온 이정후를 감상할 시간이다.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