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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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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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 |||
생년월일 | 1970년 8월 15일 | (54세)|||
출신지 |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 |||
신장 | 178 cm | |||
체중 | 73 kg |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
수비 위치 | 유격수, 우익수, 중견수 | |||
프로 입단 연도 | 1993년 | |||
드래프트 순위 | 1993년 1차 지명(해태 타이거즈) | |||
첫 출장 | KBO / 1993년 4월 10일 광주 대 LG전 NPB / 1998년 | |||
마지막 경기 | KBO / 2011년 10월 5일 광주 대 SK전 NPB / 2001년 | |||
획득 타이틀 | ||||
경력 | ||||
선수 경력 코치 경력 해설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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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가대표팀 | ||||
WBC | 2006 | |||
아시안게임 | 1990 베이징, 2002 부산 | |||
아시아선수권 | 2003 삿포로 | |||
메달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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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 |||
남자 야구 |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
동 | 2006 샌디에이고 | 2006 WBC | |
아시안 게임 | |||
금 | 2002 부산 | 2002 부산 | |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
동 | 2003 삿포로 | 야구 |
이종범 (李鍾範, 1970년 8월 15일 ~ )은 전 KBO 리그 해태 타이거즈의 내야수, 외야수이자, 현 MBC 스포츠플러스 야구 해설위원이다. 현역 시절 팀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구심점으로 통하며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으며, ‘야구천재’, ‘종범신(神)’, ‘바람의 아들’으로 불린다.[1][2] 우투우타이지만, 일상 생활 때에는 왼손을 사용하는 왼손잡이로 어릴때 오른손 글러브 밖에 없어 오른손으로 연습해서 야구를 오른손으로 하게 됐다.[3] 1993년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해 1993 시즌에 신인왕은 양준혁에게 내줬지만 공수주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펼쳐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같은 해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하며, 신인으로는 처음으로 시리즈 MVP에 올랐고 이후 1994 시즌 84도루로 역대 시즌 최다 기록을 세우는 등 국내 프로야구를 호령했다. 1997 시즌을 끝으로 국내를 떠나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한 그는 ‘한국의 이치로’라는 평가를 받으며 기대를 받았으나, 기량 부족, 팔꿈치 부상, 리그 적응 실패 등으로 부진을 거듭했고 결국 2001 시즌 중 국내에 복귀했다.[4] 국내로 돌아온 후에도 그는 국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간판선수로 성가를 떨쳤다. 2012년 시즌을 준비하던 중 갓 취임한 선동열 감독과 이순철 수석코치 그리고 구단에게 은퇴 권고를 받고 2012년 3월 31일 은퇴 선언을 하였다.[5] 2012년 5월 26일 당시 KIA 타이거즈의 홈 구장이었던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모든 선수들이 7번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임하였고, 경기 종료 후 은퇴식을 치러 그의 등번호 7번은 영구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한화 이글스 주루 코치를 담당하였고, 2014년 11월 6일 MBC 스포츠+와 계약을 맺고 2015 시즌 해설자로 변신했다. 2016년 장남 이정후가 넥센 히어로즈에 1차 지명이 되자 KBO 리그 역대 최초로 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성한 부자(父子) 선수로 화제를 모았다.[6][7] 본인은 양준혁에게 밀려 신인왕 수상에 실패했지만, 이정후가 신인왕을 수상하면서, 그 한을 풀었다.
선수 시절
아마추어 시절
광주일고 졸업 후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등 야구 명문 대학으로부터 거액의 스카웃 제의를 받았으나 장학금을 받고 광주일고 동료 3명을 끼워서 받아 주는 조건으로 건국대학교 경영학과로 진학한다. 국가대표 유격수 자리를 꿰찼고, 한양대학교 특급 유격수 유지현은 국가대표팀에서 2루수로 자리를 바꿨으며, 이 둘은 역대 최고의 국가대표팀 키스톤 콤비로 불린다.
한국 프로야구 시절
해태 타이거즈 시절
1993년 건국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차 지명을 받아 연고 팀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해태 시절인 1994년 한국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상, 1993년과 1997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였다. 입단 첫 해 뛰어난 실력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과 신인왕을 다투었으나 양준혁에게 밀려 수상에는 실패하였다.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독보적인 활약으로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4년 시즌은 그의 선수 시절 가장 절정에 달한 시즌으로 단일 시즌 최다 안타(196안타), 단일 시즌 최다 도루(84도루)에 19홈런을 기록하는 활약을 하였다. 후일 TV 프로그램에서 4할을 못한 것은 배탈로 13타수 1안타에 그친 시즌 막판 세 게임과 4할보다는 200안타를 목표로 했던 것이 큰 원인이었다고 말하였다.[8] 1995년 시즌에 동계 훈련을 불참하고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복무를 병행, 광주 홈 경기에서만 뛰게 된다.(126경기 중 63경기) 그럼에도 홈런 9위, 도루 6위에 오르며 호타준족의 대명사임을 증명한다. 이종범이 2루 주자일때 스퀴즈 번트로 홈으로 들어오는 작전조차 자주 걸릴 정도였다 (2루 스퀴즈작전)[9]. 이후 1993년 첫 우승과는 달리, 당시 ‘무등산 폭격기’로 불리던 국보급 투수 선동열이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하여 없었던 해태 타이거즈가 많은 전문가의 예상을 깨고 2시즌을 연속으로 우승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이종범은 1번 타자 및 유격수로 뛰며, 1996년에는 타율 .332(2위) 25홈런(3위) 58도루(1위)로, 또한 다음해인 1997년에는 .324(5위), 30홈런(2위), 64도루(1위)의 성적을 기록했다.[10] 역대 유격수 포지션을 맡은 선수가 150개 이상의 안타를 때려 내고, 0.580 이상의 장타율과 1점대가 넘는 OPS를 기록한 경우는 1994년의 그와 1997년의 그 단 두 번뿐이다.[10] 유격수 수비에서 강견이지만 타구 판단, 송구 정확도 등에서는 문제가 있었다. 후일 일본 진출 이후와 한국 복귀 후에도 유격수 자리를 맡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유격수가 20-20을 기록한 경우는 1996년의 이종범 이후 굉장히 드물었으며, 2012년 광주일고 후배인 강정호와 2016년 김하성이 뒤를 잇는다.
일본 프로야구 시절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원래 유격수였지만 1998년 일본 프로 야구에 진출하여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고 유격수에서 외야수로 수비 위치를 바꾸었으며, 대한민국에 복귀한 이후에도 외야수로 출장했다. 56경기째인 6월 23일에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 가와지리 데쓰로가 던진 120km대 커브에 팔꿈치를 맞아 골절상을 당한 뒤 9월 복귀하였다. 하지만 67경기밖에 뛰지 못하는 등, 성적 부진을 겪고 급기야 심각한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증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처한 그는 주니치 퇴단을 결심하고 계약을 해지했다. 그는 미국행을 추진했지만 해태 타이거즈 정기주 사장이 일본을 방문하여 그를 직접 만나 국내로 복귀할 것을 설득하였고 2001년 7월 현대자동차그룹이 연고 팀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여 KIA 타이거즈로 재창단한 시기에 그는 4년만에 국내로 복귀하게 된다.[11][12]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뛰던 시절 투수 가도쿠라 겐과 동료이기도 했었다.
한국 프로야구 복귀
KIA 타이거즈 시절
2001년에 기아자동차가 해태 타이거즈 선수단을 인수, 승계하여 KIA 타이거즈가 창단되었고 동시에 KBO 리그로 복귀하여 친정팀 KIA 타이거즈에 돌아왔다. 2003년에는 20-20 클럽에 가입하였는데(그 해에 20홈런 50도루를 기록하였고, 그의 50도루는 2003년 시즌 도루 부문 최고 기록이었다.) 이 기록은 당시 최고령 20-20 클럽 가입이기도 했다. 이 기록은 양준혁이 2007년에 경신하였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뽑혔고 주장을 맡았으며, 대회 종료 후 베스트 9에 뽑히는 등 발군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2006년 정규 시즌 중에는 부진의 늪에 빠졌으며, 2군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그해 시즌 타율은 .242에 홈런 1개, 21타점, 10도루 등 입단 이래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러한 부진은 2007년에도 계속되어, 타율이 2할을 넘지 못하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2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08년 60% 삭감된 2억 원의 연봉에 재계약하여 재기를 다짐했다. 그해 5월 한 달 동안 3할 8푼 9리, 72타수 28안타 15타점의 맹활약으로 월간 MVP로 선정되었고, 1루수로 경기에 출장하여 투수 외의 전 포지션을 소화한 선수가 되는 등, 타율 2할 8푼 4리로 ‘부활했다’고 평가받았다. 2008년 6월 3일, 1,500안타 기념패를 수상했다.(하일성 KBO 사무총장이 수여) 1,500안타 기록은 대한민국에서 8번째이다. 같은 날, KIA의 2루수 김종국은 1,000안타 기념패를 수상했다. 2008년까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여 은퇴 위기에 몰리기까지 했으나, 2009년 시즌이 되면서 괴물처럼 부활하였고, 마침내 2009년 6월 5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6회말 김상현의 타석 때 도루를 성공하면서 최소 경기(1439경기) 통산 500도루, 1000득점 기록을 달성하였다.[13][14] 그 전에 그가 통산 499도루를 기록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난 이후에 광주에서 기록을 세우겠다.”라고 밝히며 기록 달성을 미룬 것은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다.[15] 대한민국 복귀 후 2009년에 KIA 타이거즈의 10번째 우승이자, 자신의 4번째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용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인 2010년 7월 9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2루타를 쳐 한일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였다.
야구선수 은퇴 후
코치 경력
2012년에 당시 한화 이글스 감독이 된 김응용의 부름을 받아 한화 이글스의 주루코치로 계약하여 본격적인 2013 시즌부터 KBO 리그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 한화 이글스가 김응용 감독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한화 이글스 코치에서 사임하였다. 한화 이글스 코치 사임 이후 KIA 타이거즈의 신임감독 김기태 감독과 친분이 있어 KIA 타이거즈 복귀가 유력하다고 추측하였다. 또한 김기태 감독 역시 한화 이글스 코치시절과 같은 보직으로 제안을 하였으나 거절 하였다.
해설 위원 경력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KBS2 객원해설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2014년 11월 6일 MBC 스포츠+와 계약을 맺으면서 정식 해설위원으로 발탁되어 마이크를 잡게 되었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 대표팀 활약
-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대표로 뽑혔고 대한민국 팀 주장을 맡았으며, 대회 종료 후 베스트 9에 뽑히는 등 발군의 활약을 보였다. 특히 미국 현지의 A조 2라운드에서 일본과 2번째로 만난 경기에서는 8회초 1사 2,3루 상황에 후지카와 큐지로부터 승부를 결정짓는 2타점 2루타를 쳤다(이 당시 그가 타격 후 만세포즈 때문에 3루에서 아웃되었다)
기타
-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그 중 장남인 이정후는 광주서석초등학교, 무등중학교, 휘문중학교와 휘문고등학교 야구부원으로 활동했으며, 포지션은 내야수, 우투좌타이다. 고등학교 3학년때인 2016년 6월에 넥센 히어로즈에 2017년 신인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 NC 다이노스에 2013년 신인 지명을 받아 입단한 윤대영은 그의 외조카이다.
- 1994년 같은 팀 선수였던 투수 선동열과 가수 양수경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Two & One을 결성하여 앨범을 내기도 했다. 그는 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당시 해태 구단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 보너스를 주기 위해 이벤트성으로 감독님 몰래 제작했지만 의도와 달리 욕을 먹었다”라고 털어 놓았다.[16]
- 건국대 경영학과 시절과 일본에서의 생활만 제외하면 전부 광주에서 일생을 보낸 광주 토박이였으나, 2012년 은퇴 후 딸 이가연의 교육 문제로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였다. 은퇴 선언 이후 몇몇 학교들을 찾아 야구를 지도하며 조용한 행보를 보였다.
출신 학교
주요 기록
- 한국시리즈 우승 4회 (1993, 1996, 1997, 2009)
주요 수상 기록 (각종 타이틀 외)
- 정규시즌 MVP (1994, 역대 유일 유격수 MVP)
- 한국시리즈 MVP (1993, 1997)
- 미스터 올스타 (2003)
- 선발 올스타출전 13회
- 골든 글러브 6회
- 유격수 부문 4회- 1993, 1994, 1996, 1997
- 외야수 부문 2회- 2002, 2003
- 진한 바탕은 한국 프로 야구 최초 기록임
기록 | 날짜 | 소속 | 구장 | 상대팀 | 상대 투수 | 경기수 | 달성 당시 나이 | 기타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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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연속 도루 성공 | 1994. 6. 1 | 해태 | 광주 | 롯데 | 종전 : 이호성 (23도루) | [17] | |||
최고령 20-20클럽 33세 28일 |
2003. 9. 12 | KIA | 부산 | 롯데 | 손민한 | 5회 2사 0-0 상황 1점 홈런 종전 : 이순철(해태, 31세 4개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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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도루 | 1997. 8. 24 | 해태 | 광주 | 현대 | 27세9일 | 역대 3번째 |
- 1993 (16홈런 73도루 0.280- 득점 1위, 도루 2위, 타격 8위, 안타 2위, 홈런 4위, 타점 12위)
- 단일 경기 최다 도루(6개, 1993)
- 1번 & 유격수
- 1994
- 단일 시즌 최다 안타 (196개, 1994)
- 100경기이상 시즌 최고 타율 (0.393, 1994)
- 단일 시즌 최다 도루 (84개, 1994, 참조- 홈런 19개 (4위), 득점 1위, 타점 5위)
- 1번 & 유격수
- 1995 (방위복무: 126경기중 절반 63경기출장)(16홈런 (9위) 32도루 (6위) 0.326)
- 1번 & 유격수
- 1996 20-20 클럽 (25홈런 76도루 타율 0.332- 득점 1위, 도루 1위, 타격 2위, 안타 2위, 홈런 3위, 타점 3위)
- 1번 & 유격수
- 1997 30-30 클럽 (30홈런 64도루 타율 0.324- 득점 1위, 도루 1위, 타격 5위, 안타 2위, 홈런 2위, 타점 8위)
- 프로야구 최초 3할-30홈런-30도루
- 1번 & 유격수
- 2003
- 단일 시즌 최다 2루타(43개)
- 2011
- 포스트시즌 최고령 출전 기록 (41세 1개월 27일)
- 역대 유일 유격수 OPS 1.0 돌파 2차례 달성 (1994, 1997)
- 1,000득점 (역대 4번째) (2009)
- 최소경기 200 도루, 300도루, 400도루, 500 도루 (1,439경기, 역대 2번째, 참조- 전준호(1,705경기)) (2009)
- 역대 1회 1번 타자 (선두타자) 홈런 1위 (44개)
- 투수를 제외한 전체 야수 포지션을 정규게임에서 소화
통산 기록
연 도 |
소 속 |
나 이 |
출 장 |
타 석 |
타 수 |
득 점 |
안 타 |
2 루 타 |
3 루 타 |
홈 런 |
타 점 |
도 루 |
도 실 |
볼 넷 |
삼 진 |
타 율 |
출 루 율 |
장 타 율 |
O P S |
루 타 |
병 살 타 |
몸 맞 |
희 타 |
희 플 |
고 4 |
---|---|---|---|---|---|---|---|---|---|---|---|---|---|---|---|---|---|---|---|---|---|---|---|---|---|
1993 | 해태 | 23 | 126 | 525 | 475 | 85 | 133 | 16 | 4 | 16 | 53 | 73 | 19 | 32 | 35 | .280 | .331 | .432 | .762 | 205 | 11 | 6 | 8 | 4 | 2 |
1994 | 24 | 124 | 561 | 499 | 113 | 196 | 27 | 5 | 19 | 77 | 84 | 15 | 51 | 31 | .393 | .452 | .581 | 1.033 | 290 | 2 | 6 | 1 | 4 | 14 | |
1995 | 25 | 63 | 272 | 239 | 51 | 78 | 10 | 2 | 16 | 35 | 32 | 3 | 28 | 20 | .326 | .397 | .586 | .983 | 140 | 5 | 2 | 0 | 3 | 4 | |
1996 | 26 | 113 | 525 | 449 | 94 | 149 | 28 | 1 | 25 | 76 | 57 | 12 | 67 | 39 | .332 | .425 | .566 | .991 | 254 | 4 | 7 | 0 | 2 | 15 | |
1997 | 27 | 125 | 577 | 484 | 112 | 157 | 28 | 3 | 30 | 74 | 64 | 15 | 87 | 49 | .324 | .428 | .581 | 1.009 | 281 | 9 | 3 | 0 | 3 | 30 | |
1998 | 주니치 | 28 | 67 | 290 | 244 | 38 | 69 | 11 | 3 | 10 | 29 | 18 | 8 | 36 | 33 | .283 | .387 | .475 | .862 | 116 | 4 | 6 | 3 | 1 | 2 |
1999 | 29 | 123 | 484 | 424 | 76 | 101 | 20 | 5 | 9 | 33 | 18 | 7 | 38 | 62 | .238 | .310 | .373 | .683 | 158 | 6 | 7 | 13 | 2 | 1 | |
2000 | 30 | 113 | 465 | 414 | 58 | 114 | 26 | 2 | 8 | 37 | 11 | 8 | 28 | 70 | .275 | .332 | .406 | .738 | 168 | 6 | 8 | 13 | 2 | 0 | |
2001 | 31 | 8 | 13 | 13 | 2 | 2 | 1 | 0 | 0 | 0 | 0 | 0 | 0 | 4 | .154 | .154 | .231 | .385 | 3 | 0 | 0 | 0 | 0 | 0 | |
2001 | 해태/KIA | 31 | 45 | 214 | 188 | 45 | 64 | 14 | 1 | 11 | 37 | 7 | 5 | 20 | 16 | .340 | .401 | .601 | 1.002 | 113 | 5 | 1 | 2 | 3 | 0 |
2002 | KIA | 32 | 123 | 546 | 485 | 93 | 142 | 25 | 2 | 18 | 59 | 35 | 5 | 43 | 63 | .293 | .365 | .464 | .829 | 225 | 7 | 13 | 4 | 1 | 5 |
2003 | 33 | 132 | 595 | 524 | 110 | 165 | 43 | 1 | 20 | 61 | 50 | 10 | 59 | 58 | .315 | .389 | .515 | .904 | 270 | 8 | 7 | 1 | 4 | 5 | |
2004 | 34 | 133 | 577 | 493 | 100 | 128 | 29 | 0 | 17 | 52 | 42 | 7 | 53 | 50 | .260 | .350 | .422 | .772 | 208 | 9 | 17 | 12 | 2 | 1 | |
2005 | 35 | 118 | 495 | 430 | 69 | 132 | 25 | 2 | 6 | 36 | 28 | 5 | 47 | 49 | .312 | .393 | .421 | .814 | 181 | 8 | 11 | 7 | 0 | 2 | |
2006 | 36 | 93 | 379 | 339 | 41 | 82 | 18 | 1 | 1 | 21 | 10 | 7 | 24 | 43 | .242 | .302 | .310 | .611 | 105 | 3 | 5 | 11 | 0 | 2 | |
2007 | 37 | 84 | 282 | 253 | 23 | 44 | 6 | 0 | 1 | 18 | 3 | 2 | 13 | 25 | .174 | .217 | .209 | .426 | 53 | 6 | 2 | 10 | 4 | 0 | |
2008 | 38 | 110 | 362 | 317 | 38 | 90 | 19 | 4 | 1 | 38 | 9 | 3 | 32 | 26 | .284 | .348 | .379 | .727 | 120 | 11 | 1 | 9 | 3 | 0 | |
2009 | 39 | 123 | 449 | 385 | 63 | 105 | 21 | 1 | 6 | 40 | 11 | 1 | 41 | 50 | .273 | .346 | .379 | .725 | 146 | 9 | 5 | 12 | 6 | 1 | |
2010 | 40 | 97 | 289 | 265 | 36 | 65 | 16 | 1 | 4 | 29 | 2 | 2 | 15 | 33 | .245 | .293 | .358 | .652 | 95 | 5 | 3 | 6 | 0 | 0 | |
2011 | 41 | 97 | 273 | 235 | 27 | 65 | 15 | 1 | 3 | 24 | 3 | 2 | 22 | 35 | .277 | .337 | .387 | .724 | 91 | 6 | 1 | 12 | 3 | 1 | |
KBO 통산 : 18년 | 1706 | 6921 | 6060 | 1100 | 1797 | 340 | 29 | 194 | 730 | 510 | 113 | 634 | 622 | .297 | .369 | .458 | .828 | 2777 | 108 | 90 | 95 | 42 | 82 | ||
NPB 통산 : 4년 | 311 | 1252 | 1095 | 174 | 286 | 58 | 10 | 27 | 99 | 47 | 23 | 102 | 169 | .261 | .334 | .406 | .731 | 445 | 16 | 21 | 29 | 5 | 3 |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빨간 글씨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기록
한일 통산 성적
- 커리어 통산 2000안타 돌파
- 커리어 통산 221홈런- 563 도루
각주
- ↑ 장현구 (2009년 6월 3일). “<프로야구> 이종범, 되살아난 해결사 본능”. 연합뉴스. 2017년 12월 2일에 확인함.
- ↑ 손찬익 (2009년 10월 17일). “[KS]'베테랑' 이종범의 활약이 값진 이유”. OSEN. 2017년 12월 2일에 확인함.
- ↑ 강명석 (2012년 4월 13일). “[(이종범) 10아시아] <3> (이종범) 10아시아”. 10아시아. 2012년 6월 2일에 확인함.
- ↑ 박승현 (2006년 3월 16일). “이종범, 일본 야구에 한풀이”. OSEN. 2017년 12월 2일에 확인함.
- ↑ <프로야구> 이종범 '아들이 좌타자 한 풀어줘'《연합뉴스》 2009년 10월 17일 15:05
- ↑ “피는 못속여. 이종범-이정후 KBO리그 최초 부자 1차지명”. 2017년 3월 30일에 확인함.
- ↑ 고유라 (2016년 6월 27일). “'넥센 지명' 이정후, "아버지보다 뛰어난 선수 되겠다"”. OSEN. 2017년 11월 29일에 확인함.
- ↑ 김형준 (2009년 5월 4일). “[프로야구 기록추적] <3> 이종범의 4할, 누가 저지했나”. 네이버스포츠. 2009년 10월 25일에 확인함.
- ↑ 네이버사사구 (2012년 5월 29일). “사사구21회”. 코리아볼닷컴. 2012년 6월 3일에 확인함.
- ↑ 가 나 이정래 (2008년 2월 14일). “이종범, 1994년을 만들어내다”. 데일리안. 2009년 10월 25일에 확인함.
- ↑ 김상수 (2001년 7월 26일). “[인물 포커스] 3년여만에 국내 복귀 이종범 선수”. 동아일보. 2009년 11월 26일에 확인함.
- ↑ 김성원 (2001년 6월 13일). “마침내 온다, 바람의 아들”. 한겨레21. 2007년 7월 25일에 확인함.
- ↑ 정철우 (2009년 6월 5일). “'아버지의 이름으로'이뤄낸 이종범의 500도루”. 이데일리. 2009년 6월 6일에 확인함.
- ↑ 허상욱 (2009년 6월 5일). “개인통산 500도루-1천득점 기록한 KIA 이종범”. 뉴시스. 2009년 6월 6일에 확인함.
- ↑ 김은진 (2009년 6월 5일). “이종범‘역사를 훔치고 달렸다’”. 스포츠칸. 2009년 6월 6일에 확인함.
- ↑ 김진 (2009년 11월 26일). “'특급 쌕쌕이' 이종범, 과자-앨범 제작 에피소드 공개!”. 아츠뉴스. 2009년 11월 28일에 확인함.
- ↑ '홈런 경쟁 - 이종범은 24연속 도루 신기록 겹경사 ', 《동아일보》 1994. 6. 2
외부 링크
- 1970년 태어남
- 살아있는 사람
- 대한민국의 야구 해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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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프로 야구 150홈런 클럽
- 대한민국 출신 일본 프로 야구 선수
- 1990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2002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
- 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
- 광주광역시 출신
- 광주서림초등학교 동문
- 광주충장중학교 동문
- 광주제일고등학교 동문
- 건국대학교 동문
- 함평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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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O 안타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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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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