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발식
탁발 식(拓跋寔, ? ~ 371년)은 오호십육국시대 대나라의 왕 탁발십익건의 둘째 아들이자 태자로, 북위의 개국황제인 도무제 탁발규의 아버지다.
생애
[편집]가세(家世)
[편집]대왕 탁발십익건과 그의 본처인 모용황의 딸 모용씨의 아들이다.[1][2] 탁발십익건의 둘째 아들이었으나,[3] 적장자였기 때문에 태자에 봉해졌다.[주 1] 동복형제로는 동생 탁발한[1][2]·탁발알파[4][3][5][6]·탁발굴돌·탁발지간(拓跋地干)·탁발력진(拓跋力眞)·탁발수구(拓跋壽鳩)·탁발흘근(拓跋紇根)이 있었다.[5][6][7] 대나라의 동부대인(東部大人)이자 하란부(賀蘭部)의 수장인 하란야간(賀蘭野干)의 딸 하란씨와 결혼하였다.[8][9][10]
행적 및 사후
[편집]건국 34년(371년) 3월, 대나라의 장수 발발근(拔拔斤)[주 2]이 모반을 일으켜 탁발십익건을 살해하려고 하였다.[14][15][8][9][10] 그리하여 그는 칼을 뽑아들고 탁발십익건의 어좌를 향해 달려들었다.[14][15] 탁발식은 몸을 던져 이를 막아내며 맞섰고,[14][15][8][9][10] 격투 끝에 발발근을 잡아 죽였다.[8][9][10] 하지만 탁발식은 이 과정에서 갈비뼈에 칼을 맞아 부상을 입었고, 결국 그것이 원인이 되어 그해 5월에 죽고 말았다.[14][15][8][9][10] 그로부터 2개월 후인 같은해 7월, 하란부인은 탁발식의 유복자인 탁발규를 출산하였다.[8][9][10]
천흥 원년(398년) 12월 2일(399년 1월 24일),[16] 탁발규가 대나라의 후신인 북위의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도무제). 도무제는 선대의 조상들을 황제로 추존하면서 아버지 탁발식을 헌명황제(獻明皇帝)로 추존하였다.[17][15][18][19][20]
천흥 2년(399년) 10월, 북위의 태묘가 완성되었다. 도무제는 헌명제의 위패를 선대 추존 황제들의 위패들과 함께 태묘로 옮겼다.[17][15]
각주
[편집]내용주
[편집]- ↑ 탁발식의 위로는 형 탁발식군이 있었으나,[3] 탁발식군은 서자였다.[4][3][5][6][7] 이에 대해서는 탁발식군 문서를 참조하라.
- ↑ 《위서》·《북사》·《자치통감》 같은 《정사》에는 모두 장손근(長孫斤)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장손(長孫)씨가 효문제의 한화정책에 따라 태화 20년(496년)에 한족풍 성씨인 장손씨로 개성하기 이전의 선비풍 성씨는 발발(拔拔)씨였다.[11][12] 즉 장손씨는 496년까지는 발발씨로 쓰이고 불렸던 것이다.[12][10][13] 북제 때 편찬된 《위서》는 한화정책 이후 한족풍의 성씨로 개성한 이후의 시점을 반영하여, 개성 이후의 한족풍 성씨로 모두 표기하는 대신 개성 전의 선비풍 성씨로 표기하지 않았는데,[12] 이것은 한족풍으로 개성한 이후의 성씨가 기록에 적기 간편하였기 때문이었다.[12] 《자치통감》에서도 496년 이전까지 북위 및 그 전신인 대나라에서 활동했던 선비족 출신 인사들의 성씨를 개성 이후의 한족풍 성씨대로 표기하였는데,[12][13] 호삼성은 기록하기 간편하고 쉬운 점을 감안하여, 효문제의 한화정책으로 한족풍 성씨로 개성하기 이전 시점에서의 선비풍 성씨를 《위서》에서 한화정책으로 개성한 이후의 한족풍 성씨로 표기한 그대로 적용하였다.[12] 단, 《송서》와 《남제서》는 개성 이전의 선비풍 성씨 그대로 표기하였다.[12] 영문판 위키백과의 북위의 인물들의 각 문서에서도 이 점을 반영하여 개성 이후의 한족풍 성씨가 아닌 당시 개성 이전의 선비풍 성씨 그대로 표기하였다. 즉 발발근(拔拔斤)이 올바른 이름이다. 이에 따라 본 문서에는 496년에 개성하기 이전의 시점에서 개성 이전의 선비풍 성씨 그대로 표기한다.
참조주
[편집]- ↑ 가 나 위수(魏收), 《위서》, 권13 열전 제1 황후
- ↑ 가 나 이대사(李大師)·이연수(李延壽), 《북사》, 권13 열전 제1 후비 上
- ↑ 가 나 다 라 이대사(李大師)·이연수(李延壽), 《북사》, 권15 열전 제3 위나라의 여러 종실들
- ↑ 가 나 위수(魏收), 《위서》, 권15 열전 제3 소성제 자손
- ↑ 가 나 다 사마광, 《자치통감》, 권103 진기(晉紀) 제26
- ↑ 가 나 다 호삼성, 《자치통감음주》, 권104 진기(晉紀) 제26 열종(烈宗) 효무황제(孝武皇帝) 上(中)
- ↑ 가 나 백양(柏楊), 《백양판자치통감(柏楊版資治通鑑)》 제4집 〈남북분립(南北分立)〉 부견대제(苻堅大帝)[376년(병자)]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마광, 《자치통감》, 권103 진기(晉紀) 제25
- ↑ 가 나 다 라 마 바 호삼성, 《자치통감음주》, 권103 진기(晉紀) 제25 태종(太宗) 간문황제(簡文皇帝)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백양(柏楊), 《백양판자치통감(柏楊版資治通鑑)》 제4집 〈남북분립(南北分立)〉 부견대제(苻堅大帝)[371년(신미)]
- ↑ 사마광, 《자치통감》, 권140 제기(齊紀) 제6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호삼성, 《자치통감음주》, 권140 제기(齊紀) 제6 고종(高宗) 명황제(明皇帝) 中
- ↑ 가 나 백양(柏楊), 《백양판자치통감(柏楊版資治通鑑)》 제5집 〈난세봉연(亂世烽煙)〉 전반한화(全般漢化)[496년(병자)]
- ↑ 가 나 다 라 위수(魏收), 《위서》, 권1 제기(帝紀) 제1 서기(序紀)
- ↑ 가 나 다 라 마 바 이대사(李大師)·이연수(李延壽), 《북사》, 권1 위 본기(本紀) 제1 中 태조 도무제
- ↑ 중앙연구원 음양력 변환기
- ↑ 가 나 위수(魏收), 《위서》, 권2 제기(帝紀) 제2 태조기(太祖紀)
- ↑ 사마광, 《자치통감》, 권110 진기(晉紀) 제32
- ↑ 호삼성, 《자치통감음주》, 권110 진기(晉紀) 제32 안황제(安皇帝) 乙
- ↑ 백양(柏楊), 《백양판자치통감(柏楊版資治通鑑)》 제4집 〈남북분립(南北分立)〉 비수지전(淝水之戰)[398년(무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