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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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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흡곡과 학포, 파천, 상음.

흡곡(歙谷)은 강원도의 옛 행정 구역이다. 흡곡의 영역은 현재의 행정 구역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 통천군 북부와 안변군 상음리에 해당한다.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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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시대 때 습비곡현(習比谷縣) 또는 습비탄현(習比呑縣)으로 불리었다. 신라 경덕왕 때 습계(習磎)로 개칭되어 금양군(통천군)의 영현이 되었으며, 고려 때 흡곡으로 개칭되었다. 고종 35년(1248) 흡곡이 독립되어 현령을 두게 되었다.[1]
  • 1596년, 통천군에 폐합되었으나 2년 후인 1598년에 복설되었다.[2]
  • 1895년, 이십삼부제 시행으로 강릉부에 소속, 흡곡군(5등군) 설치
  • 1896년, 십삼도제 시행. 강원도 흡곡군.
  • 1902년, 함경남도 안변군에서 학포사(鶴浦社; 안변의 속현이었던 학포, 파천(派川; 또는 패천(沛川)), 상음(霜陰)을 모두 포함한다)[3]를 편입하였다.[4] 학포의 이속 건에 대해서는 1865년부터 계속 논의되어 왔는데, 1875년 이속하기로 결정된 것이 유예되었다가 1902년에 비로소 시행된 것이다.[5]
  • 1903년, 흡곡군청이 학포면으로 이전하였다.[6]
  • 1910년, 흡곡군이 통천군에 폐합되었다.[7] 군남면이 답전면에 통합되어 원(元) 흡곡 지역이 3개 면에서 2개 면으로 재편되었다.[8]
  • 1914년, 부군면 통폐합 과정에서 흡곡 지역 영외면(嶺外面)이 통천 순달면(順達面)과 합면되어 순령면(順嶺面)이 되었다. 나머지 4개 면, 곧 답전면(踏田面), 학일면(鶴一面), 학이면(鶴二面), 학삼면(鶴三面)은 존치.[9]
  • 1928년, 학이면과 학삼면이 흡곡면으로 합면되었다.[10] 흡곡면 연동리(淵洞里)를 풍호리(豊湖里)로 개칭하였다.[11]
  • 1937년, 순령면이 고저면으로 개칭되었다.[12]
  • 1938년, 고저면이 고저읍으로 승격하였다.[13]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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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작성된 《호구총수》에 따르면 흡곡 지역의 호구는 1282가구 6428명이었다.

  • 흡곡현: 609가구 2789명
    • 현내면: 258가구 1096명
    • 답전면: 175가구 848명
    • 영외면: 176가구 845명
  • 안변부 학포사: 673가구 3639명

1910년 작성된 《민적통계표》에 따르면 구 흡곡군의 호구는 2935가구 15596명이었다.

  • 통천군 - 학포 지역: 1837가구 10323명
    • 학일면: 775가구 3527명
    • 학이면: 505가구 3056명
    • 학삼면: 557가구 3740명
  • 통천군 - 흡곡 지역: 1098가구 5273명
    • 영외면: 416가구 2041명
    • 답전면: 682가구 3232명
  1. 세종실록 지리지
  2. 흡곡현읍지 (c. 1705)
  3. 안변도호부읍지 (1899)
  4. 광무 6년 칙령 제8호 (1902년 5월 10일)
  5. 고종실록 권2, 권12, 권13
  6. 광무 7년 칙령 제14호 (1903년 8월 4일)
  7. 융희 4년 칙령 제7호 (1910년 1월 31일)
  8. 융희 4년 내부령 제8호 (1910년 4월 25일)
  9. 다이쇼 3년 조선총독부 강원도령 제2호 (1914년 3월 1일)
  10. 도령 제3호 통천군내면의구역및명칭 (1928년 3월 10일)
  11. 도령 제5호 통천군흡곡면내리의명칭 (1928년 5월 12일)
  12. 도령 제8호 (1937년 3월 31일)
  13. 부령 제197호 (1938년 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