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 김이 쓴 ‘결혼 퇴직 각서’는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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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10.19. 오후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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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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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미쓰 김이 쓴 '결혼 퇴직 각서'

'재직 중에 결혼하게 되면 자진 사직하겠음을 서약한다' 여성이 취업하기 위해 이런 각서를 써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 1970년대 대한민국이다. 이 각서는 어떻게 사라졌을까. '결혼하고 근무하기'를 목표로 세우고, 마치 독립 운동하듯 퇴근 이후 작전을 짜고 힘을 모은 여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76년 당시 산업은행에서 근무했던 노미숙씨는 결혼식을 올린 뒤 신혼 여행을 떠난 게 아니라, 바로 심야 회의에 들어갔다. 여성이 결혼하고도 계속 일하는 선례를 만들기 위해 대책을 논의한 자리. 이 날 회의는 비장감마저 흘렀다.


결혼식 날 밤에 저희가 삼일빌딩 스카이라운지에서 이제 각계각층에서 도와주실 분들이 다 모이셨어요. 숙의를 한 거예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만약 은행에서 소송으로 나오면 저는 그냥 법정에 서겠다. 그러고 이제 그러면 각 행에서 이제 전부 모금 운동을 해서 뒤를 전부 대겠다. 무료 변론을 하겠다. 전부 이렇게 짜여진 거예요.

-노미숙 (산업은행 근무 1969~1998)

이들의 노력으로 '결혼 퇴직 각서'는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월급, 승진 차별을 감내하고 임신하면 미제 코르셋으로 배를 감추며 악착같이 버티며 일해야 했던, 이름도 직책도 없이 '미쓰 김'으로 불린 이들이 쓴 역사였다.

■ 같은 학교·과 공대생 남녀 111명 추적…'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워킹맘' 대 선배인 '미쓰 김'들의 고군분투 이후 무려 반세기가 지났다. '여자가 무슨 공부냐' 했던 시대를 지나 2005년엔 오히려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질렀다. 그 뒤로 한 번도 역전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시대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도 계속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원하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을까?

KBS 시사기획 창은 부산, 강원, 서울 소재 대학 3곳. 취업이 잘되는 공대, 03학번 졸업생들이 지금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추적 조사했다. 같은 학교, 같은 과를 졸업한 남녀의 삶이 출산, 육아기를 거치며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KBS 조사에 응답한 이들은 총 111명. 3개 대학 모두 큰 흐름은 동일했다. 출발선이 같았던 남녀의 삶이 달라지는 이유, 아이 때문이었다.




육아를 위해 아예 퇴사하거나, 회사를 다니면서 육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업무를 조정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남성이, 꿈과 멀어졌다는 답은 여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사회에 나올 때 출발선이 같아도 아이가 생기면 육아의 무게는 여성에게 더 쏠리고, 남성은 육아보다 생계를 더 책임지는, 오래된 성별 분업 구조는 이번 조사 결과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KBS 조사 결과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70대, 김 양이라고 불려졌던 그 선배 여성분들보다는 환경이 나아졌겠지만, 그렇게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취업이 잘된다고 생각을 하는 공학 계열의 여성들조차도 똑같은 현상을 발견하게 된 것은 우리 사회에서 경력 단절 여성의 문제가 아직도 유효하고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승진에서도 봤을 때, 이 조사 결과에서 업무 조정을 하신 여성들이 많았어요. 저는 이거는 당연한 거라고 봐요. 왜냐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가 없어요. 우리는 기계가 아니에요. 육아기에는 육아에 집중을 해야 되는데, 너무나 대조적으로 동기 남학생들은 육아를 위해 업무 조정을 했다는 사례가 적게 발견이 되는 거예요.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2024년에 다시 등장한 '결혼 퇴직 각서' ?

엄마들은 회사를 나가라는 압박인 '결혼 퇴직 각서'는 이름만 바꾼 채 슬그머니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김00 / 30대 여성
정규직으로 9년 넘게 일을 했거든요. 육아휴직을 이어서 하려고 했는데 복직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확인서 같은 걸 쓰라고. (휴직 끝나고) 복직을 하려고 서류를 제출했어요. 그랬더니 대기 발령 3개월 서류가 저한테 메일로 왔어요. 3개월 이후에는 권고사직 처리를 해서 복직이 안됐어요. 9년 동안 일했는데 진짜 복직을 안 시켜주는구나...

이00 / 30대 여성
(육아휴직 쓰겠다고 했더니) '이래서 여자를 안 뽑는다. 애초에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입사를 한 게 아니었냐' 후임자를 사실 구하는 과정에서도 '가임기 여성은 구하지 않겠다'고. 법으로는 정해져 있지만 자유롭게는 쓸 수는 없구나. 결국에는 퇴사를 하게 되고 경력 단절이 되는구나...

■ 28년 연속 월드 챔피언…계속 1등 해도 괜찮을까?

이제 여성들은 얼마든지 회사 대표도, 연구원도 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는 순간 일이냐, 가정이냐 여전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1970년대 미쓰 김이 일터에서 겪어야 했던 불이익, '모성 페널티'는 2024년 김 대표에게도 고스란히 따라붙는다. 그 결과는? 28년 연속 OECD 1위란 불명예로 기록되는 성별 임금 격차이다. 국가 소멸론까지 나올 정도로 현안이 된 '초저출생'이다. 이대로라면 인구 위기 대응도, 경제 성장도, 더 나은 삶도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여성의 경력단절, 여성이 노동 시장에서 겪는 불리함은 저출산의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인구 변화 속도를 굉장히 가속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빠르게 심각해지는 것 자체가 가까운 장래에 있어서는 한국 사회와 경제에 가장 큰 위기 요인이 될 것 같습니다.

여성이 여기 굉장히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데요.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 남성에 비한 여성의 상대적인 생산성이 최근 OECD 평균 수준까지만 개선이 될 수 있다면, 2047년까지 노동 인구를 180만 명 늘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철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시사기획 창 <미쓰 김, 김 대표> 는 반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는 '워킹맘 잔혹사'에 대한 기록이자, 초저출생 '주범'이 돼버린 여성들의 속마음, 오늘도 출근길에 나서는 엄마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전히 가장의 무게를 두 어깨에 고스란히 짊어진 이 시대 아빠들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빼고 '저출생 위기 극복'이 가능할지 묻고 싶다

시사기획 창 <미쓰 김, 김 대표> 유튜브 다시보기
https://youtu.be/UYmUlGLdR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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