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와 정서를 탄탄히 부여잡고 들어가는 빼어난 오컬트 영화의 모범적 계승자처럼 보이지만, 본작이 정말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 같은 궤도를 이탈하면서부터다. 실은 도입부부터 이를 예고하고 있다. 피터의 방을 본떠서 만든 프레임 속 프레임의 미니어처 속으로 서서히 들어가는 영화의 시작은, 영화 그 자체의 전지적 권능으로 공간과 인물을 속박하여 이들이 온전한 공간을 부여받지 못하고 불안에 떨어야 하거나, 망령처럼 혹은 망령화되어 떠돌아야 함을 암시한다. 레퍼런스를 소환하여 나열하는 것은 실상 해당 영화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못할 때도 많기에 선호하지 않지만, 장르의 토대와 자장에 놓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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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Love 1993
이후에 이명세가 내놓은 작품들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가 거둔 아름다운 성취만큼은 독보적이다. 티끌 한 점 묻지 않은 듯한 너무나 사랑스럽고 순수한 사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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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Friends 1996
예민한 여성 감독들은 종종 남성의 사회에 관심을 돌려 남성성과 집단의 굴레로 일그러진 초상들을 날카롭게 응시한다. 여성 감독이 만든 할리우드 최초의 필름 느와르로 불리우며 시종 거의 남성 세 명만이 스크린을 채우는 이다 루피노의 <히치하이커>, 아프리카 프랑스 외인부대의 담아낸 클레르 드니의 <아름다운 직업> 등이 떠오른다. 이는 기득권인 남성들에 비해 젠더의 문제에 더더욱 예민할 가능성이 큰 지정성별 여성들이 오히려 유약하고 소외받는 남성 내부를 바라볼 시각을 가진 것이기도 할테다.
극중에 등장하는 '무소속' '섬세' '삼겹' 같은 작명에서부터 느껴지듯, <세 친구>는 갓 스물이 되어 학교와 주류… -
Microhabitat 2017
<소공녀>는 자칫 한없이 무거워지기 마련인 비루한 현실 속 인물들의 현실 반영성에 상당히 인공적인 픽션-판타지를 재치있게 섞어 그려내는 광화문 시네마의 개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소공녀>가 딛고 있는 세계는 냉혹한 현실이지만, 이를 형성하는 공기와 정서는 (특히 '미소'라는 인물 그 자체의) 판타지다. 물론 현실을 끌어들여온 설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타당하다. 이를테면 현실과 판타지 두 세계 사이를 가로지르며 진행되어오던 영화가 어느 순간 헐겁고 위태롭게 다가온다. 특히 옛 동료들이자 친구들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남아있는 미소를 보여주는 영화의 따스한 온도가 인상적 것과는 별개로, 미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