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김병수 기자] 1997년 11월 21일, 대한민국의 부도(不渡·IMF 외환 위기).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기구들로부터 총 550억달러를 빌렸다. 2001년 8월 23일 국가 채무를 모두 갚았다. 대가는 대한민국의 구조조정.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생겼다. 두 기관은 대한민국의 썩은 살을 도려내는 칼잡이가 됐다.
제1대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이헌재는 그렇게 저승사자가 됐다. 나라를 잃어봤던 우리 국민은 직장에서 쫓겨나면서도 '금 모으기'에 동참했다. 덕분에 전 세계에서도 드물게 3년 9개월 2일 만에 부도 상황에서 탈출했다. 금감위원장과 금감원장의 겸직 시스템은 2008년 3월까지 10년 동안 이어졌다.
금감위가 금융위원회로 간판을 새로 단 것도 이때다. 금융정책을 강화했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검사소로 사실상 축소됐다. 위원장과 원장의 분리 시대도 열렸다. 어떤 이들은 재무 공무원들이 정신 못 차리고 다시 과거로 회귀한다고 비아냥거렸다. 검찰·경찰 관계와 비슷한 구조여서 그렇다.
금융 구조조정을 주도한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주도면밀했다. 즉각 5개 은행을 폐쇄했다. 대형 5대 은행인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신탁)은행도 간판을 내렸다. 행시 6회 수석으로 공직의 길에 들어선 이헌재 위원장은 이전부터 능력을 인정받으면서도 순탄하진 못했다.
1973년 대통령 경제비서실, 1984년 대우반도체 대표, 1985년 한국신용평가 대표. 우리 정부는 1988년 처음으로 '금리자유화 계획'을 세우고, 1995년에서야 대부분 금리가 자유화됐다. 금리 자유화 10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첫 신용평가회사의 대표를 했다니….
금융산업에서 신용평가는 선진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시작점이다. 신용평가 등급에 따라 대출 기업이 부담할 금리와 신용이 결정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가 하는 역할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2007년~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예측하지 못하고, 오히려 숨겼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 역시 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방증한다.
금융산업의 이해와 준비된 역량을 갖춘 이 위원장이었기에 국가 부도 사태를 비교적 이른 시일에 복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긴 어렵다.
이제 26년이 지났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5대 원장이다. 금감원장직은 임기 3년을 보장한다. 금융 감독·검사의 전문성과 일관성·독립성을 두루 고려했다. IMF의 권고도 있었다.
한국은행처럼 정권에 휘둘리지 말고, 경제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라는 취지다. 그러나 지켜진 적은 별로 없다. 지금까지 평균 재임은 21개월 정도다. 임기 보장을 어기면서도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도 사과한 적은 없다.
아마도 이복현 원장은 임기를 지킬 몇 안 되는 원장이 될 것이다. 등판 땐 분명히 신선했다. 적지 않은 구설과 혼선에도 흔들리지 않는 뚝심도 보였다. 정권의 튼튼한 뒷배도 작동했을 것 같다. 금융산업과 금융시장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그동안 꾸준히 뒷말이 있었다.
계엄·탄핵 정국으로 모든 게 혼란스럽다. 내후년이면 IMF 30년이다. 우리 금융 감독시스템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뒤돌아볼 시점이다.
/김병수 기자(bs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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