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연 오프닝이 압권이다. 할리우드라는 멈추지 않는 공장의 운동성 혹은 산만함을 체감케 하는 8분가량의 롱테이크. 카메라는 사무실 내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각본의 이야기들을 듣고 픽스하는 그리핀의 업무를 창문 너머로 관음 하듯 지켜본다. 수많은 각본가들의 아이디어가 몇십 초 만에 간택되거나 소멸되는 허무의 순간들. 그 짧은 시간 안에 그리핀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한다면 누군가의 몇 개월, 몇 년 간의 노력은 단순한 종이 이상의 가치를 갖지 못한 채 영원히 서랍 속에 봉인되며, 또 누군가의 각본은 백만 불짜리 황금이 되어 돈과 명예를 약속하는 계약서로 변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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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ault on Precinct 13 1976
<분노의 13번가>는 존 카펜터가 바라보는 미국의 사회, 그리고 더 나아가 병든 세상에 대한 그만의 영화적 진단이다. 과거의 윌슨에게 항상 그의 곁에는 죽음이 도사린다고 말하던 목사. 하지만 이내 목사의 말은 윌슨에게만 국한된 발언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 그들의 폭력에는 설명이 없고, 행위에 대한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좀비 떼처럼, 언제나 손가락은 총의 방아쇠를 향해 있을 뿐. 고립된 상황에서 마치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존재들의 침입을 막는 듯한 연출. 결국 우리들의 세계를 잠식한 거대한 폭력의 정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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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l to Hell 2022
학교폭력이라는 하나의 주제에서 출발하여 가해자의 일방적인 자기 구원, 종교의 모순적 시스템, 믿음의 부패, 변하지 않는 악 등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까지 기어이 파고들고야 마는 각본이 흥미롭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이러한 도발적인 사회고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복합적인 메시지를 담아내기 위한 일차원적 이미지들의 나열과, 그로 인해 영화 특유의 감성을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달하지 못한다는 빈틈은 분명 아쉬운 성과이다. 그러나 당장 본인의 삶이 불행하기에 다른 이의 삶 또한 망치겠다는 악마적 발상에 대한 저격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꼭 필요한 일침으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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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lave 2024
개인적으로 종교와 인간 사이에 불쾌하게 놓여 있는 괴리감, 그러니까 마치 하늘과 땅은 영원히 닿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여긴다. 결국 교황이라는 명예도 신이 부재하는 지상에서 하늘의 존재를 대신하여 인간들끼리 정하는 직위에 불과하지 않는가. 실제로 영화에서 줄곧 언급되던 교황 뒤에 붙는 '직'이라는 낱말. 어딘가 신의 대리인이라는 거창하면서도 숭고한 의미에 딸려 오는 낱말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황 또한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신의 뜻을 수행하는 자이기 이전에 우리들과 같은 인간일 뿐이며, 그렇기에 끊임없이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회개하는 과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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