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매통신]신사임당의 ‘부활’

신사임당이 500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다. 우리가 은근히 무심한 척하지만 솔직히 너무너무 갖고 싶은 돈, 2009년부터 발행될 5만원권 지폐의 새 얼굴로 신사임당이 결정되었다.

‘조선시대 이씨 남자’ 일색인 화폐 인물이 시대별·성별로 다양해졌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962년 발행된 100환권 지폐에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아들이 등장한 적이 있지만 한 달도 못돼 폐기된 데다, 특정한 인물도 아니어서 신사임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지폐에 등장하는 여성이란 영광을 안게 되었다. 신사임당의 고향인 강원도 강릉은 거의 축제 분위기라고 한다. 성균관대학교 출신인 한 직장인은 “훌륭한 선배들(율곡 이이, 퇴계 이황)과 이사장(세종대왕)에 이어 학부모(신사임당)까지 모두 지폐의 주인공이 된 학교를 나온 것이 자랑스럽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5일 신사임당을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이자 어진 아내의 소임을 다하고 영재교육에 남다른 성과를 보여준 인물”이라며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 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교육과 가정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여성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전부터 신사임당 선정을 반대해온 문화미래 이프의 엄을순 대표는 “신사임당이 현모양처라는 이유로 화폐인물이 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많이 뒤처졌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또 모든 여성들에게 신사임당처럼 슈퍼우먼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거세게 항변했다. 30대의 한 주부는 이렇게 주장했다.

“솔직히 신사임당의 아들이 율곡이 아니라 망나니였으면 아무리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인정을 받거나 이름을 남길 수 있었겠어요? 가뜩이나 아이들 성적표가 엄마 성적표이고 아이들을 명문 대학에 보내는 게 엄마의 평생 숙원사업인데 신사임당을 매일 보는 지폐에 담는다는 건 자식 사교육 잘 시켜 명문대 보내라는 소리 아닌가요?”

물론 신사임당이나 현모양처가 무슨 문제냐는 지적도 많다. 무엇보다 신사임당이 실상 그렇게 온순하고 순종적인 부인이 아니라 친정살이를 하고 자녀교육에 힘쓰면서도 자신의 재능 살리기를 게을리하지 않은 활동적 여성이었다는 주장이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극도로 어려웠던 시대, 여성들의 작품이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에 살면서도 지금까지 그 작품과 이름을 남기는 여류화가 신사임당이라는 존재를 ‘현모양처 이미지라서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시대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성과를 올렸던 여성에 대한 실례”라는 이들도 있다.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여서 안된다는 주장에 대해 한 남성은 목소리를 높였다.

“현모양처가 뭐가 나쁜가요? 현명한 어머니에 착한 아내가 죄인인가요? 현명한 어머니란 자녀에게 올바른 가정교육을 시키고 더 나은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는 어머니이지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극성어머니는 아닐 겁니다.”

“착한 아내 역시 남편의 폭력과 무능을 억지로 참는 부인이 아니라 남편이 지치고 힘들 때 다독거리고 품어주는 그런 아내가 아닐까요? 가뜩이나 알파걸이다, 황혼이혼이다 해서 청소년부터 노인들까지 다 여성들에게 주눅들어 있는 시대에 지폐를 통해서라도 현모양처를 만나면 좋지 않을까요.”

문제는 신사임당이 아니다. 어쩌면 단군 이래 반만년 역사에 여성들의 명단이 이토록 초라하며, 과거 여성들에 대한 연구나 자료가 이토록 빈약한가가 더 큰 문제이다. 또 별다른 공청회나 여론수렴을 거치지 않은 한국은행도 비난을 면키는 힘들 것 같다. 아무튼 찬반양론에도 불구하고 2009년 새로운 고액지폐가 나올 때 원도 한도 없이 신사임당을 내 손으로 많이 뵙고 간직하고 싶은 게 아줌마들의 진심 아닐까.

〈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