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하게 넘나드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 물 햇빛 나무 바람 등 눈부신 자연들, 그 안에서 펼쳐지는 모험 같은 여정, 그리고 모험 같은 감정. 어쩐지 기욤 브락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 속에 <와일드 투어>는 (역시나 기욤 브락의 영화처럼) 풋풋하고 간지럽게, 또 아스라하고도 쓸쓸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와일드 투어>가 포착하는 현장은 식물을 찍고 채집하고 분석하는 워크숍이지만, 영화는 그보다 마치 식물을 관찰하듯이 인물들을 바라본다. 이들의 활동을 포착하고, 관계와 감정을 채집하고, 활력을 끄집어내고, 이미지를 만든다. 영화의 중층적인 관찰로 인해 워크숍의 '도감 만들기'가 흡사 영화를 만드는 행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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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mplete Unknown 2024
최근 영화를 뒤흔드는 배우의 섬세함을 연이어 느끼게 된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마치 플레이리스트, 혹은 주크박스처럼 이어지는 노래와 노래로 하여금 상황과 시대를 설명하고 연결한다.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에 따라서 감정적이고 상황적인 긴장감을 이끌어내게 되는 스타일이 음악 영화로서 상당히 흥미롭고 인상적이지만, 전개 자체는 다소 나이브하고 얼마간 친절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단조로운 전개에조차 복잡성과 풍성함을 더해주는 게 배우들의 힘 같다. 피트, 실비, 조안, 조니를 맡은 모두가 그렇지만, 그래도 역시 밥, 티모시 샬라메다. 가히 말하자면 <듄>을 넘어서는 티모시 샬라메의 눈빛.
물론 어느 영화에서 배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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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key 17 2025
This review may contain spoilers. I can handle the truth.
딱 예상한 정도로 아쉬웠지만, 생각보다 마음이 동했다. "왜 살려줬냐"는 미키의 물음에 "그럼 죽여?"라고 되묻는 간단한 논리에, 흡사 <우리들> 엔딩 속 명대사가 떠오르기도 하면서, 이상한 뭉클함이 있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손쉽게 얻어내는 나이브한 따스함이 미더웠던 건 아니다. 그보다는 영화의 바이브 자체가 마치 국제적인 명성으로 얻어낸 자본의 여유를 만끽하는 거장의 소품집처럼 보였달까. 물론, <미키 17>엔 봉준호스러운 것들, 엄밀히 말하면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요소들이 프린팅되는 수준으로 아득바득 담겨있다. <기생충>이 본인의 영화적 취향으로 채워진 봉준호의 집이었다면, <미키 17>도 봉준호의 (자기복제적인) 소우주, 행성, 니플하임처럼 보인다. 다만 진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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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Zone of Interest 2023
보색 잔상이라는 게 있다. 특정한 색을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눈이 피로해지고, 대신 그와 대비되는 보색에 민감해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보색으로 잔상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착시 현상인데, 의사의 수술복이 초록색인 이유이기도 하고, 이를 이용한 장난스러운 그림이 인터넷에 떠돌기도 한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면서 보색 잔상이 떠올랐다. 자연광 속 평화롭고 목가적인 공간, 아름답고 호화로운 삶, 모든 게 풍족하고 안락해 보이는 가족. 그런데 문득 하얀 벽, 수용소 담벼락이나 회스의 새하얀 정복을 보면 그 위로 전혀 다른 이미지가 아른거린다. 절망적이고 아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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